Herr.Kwak_일상/독일에서 살아가기

[우당탕탕_독일생존기]#38. 2차대전 포탄이 발견되어 하룻밤 동안 홈리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왜?

o헤어곽o 2021. 10. 9.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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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하!!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헤어곽 오랜만에 일상 이야기로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 나름 바쁜 9월을 보내고 맘 졸이는 10월 초를 보내고 있었는데요, 다행히도 학업에서 좋은 결과(는 아니지만 만족하는)를 받고 이제 휴식 1일 차를 보내고 있습니다. 뭐 이 이야기는 각설하고 (오늘 이야기랑 맞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이야기니까) 바로 오늘의 테마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제목 보시면 아시겠죠?

어제 오전 11:30분부터 전 홈리스였습니다. 네, 집을 잃었었습니다.

왜냐구요? 포탄이 발견되었거든요. 그 반경 1km가 폐쇄되었었습니다.

 

그 이야기 한번 재미있게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다 함께 레츠 기릿!!

 


 

어제 그러니까 2021년 10월 07일 목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이른 아침. 점점 늦어지는 일출에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잠에서 깨어나 밥을 하고, 나설 채비를 하고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그 이전에 와이프 직장(사무실)으로 걸어서 함께 간 후, 운동삼아 빙 돌아서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지금 이때가 뭐, 여유롭고 뭐 그런 때니까요?)

 

그런데, 집에서 나온 지 채 5분이 되지 않았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아니 떼를 지어 모여서 우글우글거립니다. 어? 저기는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인데 뭐지?

 

경찰이 안전줄(?)을 치고 있네요. 그런데 인도 한쪽이 열려있습니다. 

'아, 저쪽으론 지나가도 되는구나.' 하고 지나가는데 경찰이

"헤이!! 지금 길 막고 있는 거 안 보여? 지나가면 안 돼 나가!" 하는 겁니다.

독일어는 아직 100% 완벽하진 않지만 지지 않습니다.

"헤이!! 네가 지금 치고 있는 건 그쪽이고, 이쪽은 네가 줄 안치고 열어놨잖아. 그럼 지나가도 되는 거 아니야?"

"아니!! 여기 길 전체가 폐쇄되는 거야, 돌아가!!"

"뭐 그러던지."

에잉. 쿨하게 돌아섭니다. 뭐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 루트를 다 깨고 있거든요. (조깅을 한다고 도시를 열심히 다닌 보람이 이제야 좀 나오네요.)

 

 

그러고 나가는데, 가는 곳마다 안전줄을 막 치고, 조금만 더 가니까 교차로에 또 치고 그러고 있더라구요? 옆에 독일 분이 소방대원한테 질문하는걸 옆에 서 있다가 듣게 되었는데 "20분 전에 우리도 신고받아서 이제 막 치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더라구요. 근데 왜? 이유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와이프 사무실까지 가면서 안전줄을 치는 구간을 3번을 지났습니다. 뭐 돌아오는 길에는 다른 길 많이 열렸으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와이프를 사무실로 바래다주고 돌아옵니다. 

 

'어라? 어라라?'

 

 

생각했던 루트들이 다 막혀있네요. 심지어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은 완전 차단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면 못 참잖아요? 침착하게, 태연한 듯이 소방관에게 묻습니다. 

 

"여기로 못가는 거야?"

"응, 학교 건물 전체 다 지금 폐쇄야."

"도서관도?"

"응 전부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폭탄이 발견되어서 그거 제거해야 해."

 

폭탄이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BOMBE라고 하는 걸 보니, 테러용 폭탄이 아니라 2차 대전이나 1차 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이 공사장에서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폐쇄가 된다고 하는데요, 에휴. 도서관을 포기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가는 길마다 빨간색과 흰색의 조합이 가득한 안전줄이 쳐져있네요. 어디까지 돌아가야 하는 건가...

 

터덜터덜.

 

20분이면 올 거리를 35분이 걸려서 도착합니다. 와이프 사무실까지 갔다가 돌아온 거리를 생각하면 아침부터 한 5km 이상을 걸은 것 같아요. 와 벌써 피곤한데? 그래도 뭐 집이니까.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과 취미생활, 독일어 신문기사 읽기 등 나름 알찬 오전을 보내고 있었는데, 와이프한테 전화가 옵니다.

 

"있잖아, 그거 길어지면 우리 집 못 가고 오늘 피난처 가야 될 수도 있겠는데? 우리 집도 그 반경 내에 들어왔어."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밖의 상황이 궁금해졌습니다. 휴대폰과 지갑, 그리고 열쇠만 챙겨 들고 가볍게 건물 밖으로 나서봅니다. 이런. 안전줄이 우리 골목 끝에 있네요. 이로써 저희 집도 그 폐쇄되는 구간 내에 있는 건 확실해졌습니다. 골목길 끝에서 소방대원과 경찰관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뭐 예를 들면

"나 여기 이 골목에 사는데, 이 골목 다 폐쇄되는 거야?"

"그럼 나 집에 머물면 안 되는 거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그럼 어디로 가서 대기할 수 있는데?"

"밤에는? 밤에는 집에 올 수 있어?"

 

뭐, 언제 끝날지 모르고, 집에는 있으면 안 되니까 짐들 최대한 빨리 챙겨서 나오랍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건물로 들어오니, 복도에서 경찰 2명과 마주칩니다. 옆집 문을 두드리고 있네요. 제게도 접근을 합니다.

 

"지금 폭탄이..."

"응 알아. 밖에서 다 들었어. 짐 챙겨서 나가면 되는 거지?"

"응."

 

물론 이 이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습니다만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중요치 않는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들이라 과감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뒤이어 찾아보니 반경 내에 저의 골목과 건물이 포함이 되어 있네요. 아래 구글맵상에 옅은 붉은색 큰 원이 1km 접근금지 구역이고, 빨간 점이 저의 집입니다. 하하하하

 

 

어디서 자게 될지 모르니까, 아니 집에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세면도구, 와이프 화장품, 수건, 잠옷, 편한 옷, 슬리퍼, 내일 신을 양말 등등 여행용 배낭에 바리바리 싸매고 나옵니다. (와이프와 통화해서 필요한 것들을 전해받았죠. 물론 이후에 뒤늦게 생각이 난 게 있어서 몇 개는 추후 구매를 해야 했지만요.)

 


 

이리하여 오전 11:30분. 전 제 방이 있는 건물을 떠나야만 했고,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게 건물에서 나와야 했고, 그렇게 배낭 하나를 둘러맨, 어쩌면 여행자로 보이고, 어쩌면 홈리스로 보이는 모양새로 골목길에 서 있었습니다.

 

1km 반경 내에 있어서 열려있는 괴팅엔 대학교 수학과 건물로 들어가서 (왜냐하면 와이파이가 연결이 되니까) 와이프 퇴근시간을 기다립니다. 물론 시에서 1km 반경 내에 집이 있어서 못 들어가는 시민들을 위해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는데요, 뭐 근처 고등학교(김나지움) 체육관에 의자를 깔아놓은 수준입니다.

 

 

'응? 여기서 자야 된다고? 의자밖에 없는데?'

제가 미리 가봤을 당시 시간이 일러서 많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면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돗때기 시장과도 같을 번잡함. 시끄러움. 통제 불능.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비용은 들겠지만, 보상도 못 받겠지만, 여기보다는 호텔을 잡아서 호텔에서 자는 게 낫겠다 와이프와 판단을 합니다.

 

 

위 사진이 와이프 사무실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딱 사무실 앞 20m 안쪽. 거기가 1km 접근금지 제한선이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와이프 사무실에서는 일을 할 수 있고,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거죠. 내일 출근을 하려면 잠은 또 제대로 자야 하니, 호텔을 갈 수밖에 없었죠.

 

같은 도시 내에서 멀쩡한 집을 놔두고 호텔이라뇨.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인스타에 스토리로 올렸더니 독일 곳곳에 있는 지인과 인님들이 자기들도 그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네요.)

 


 

그래도 친절한 와이프 사무실의 여직원분 덕분에 사무실에서는 차를 타고 예약해 둔 호텔로 갑니다. 호텔은 한국의 호텔과 비교하면 호텔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호텔입니다. 몇 번 독일 호텔에서 묵었더니, 딱 예상했던 그 수준의 방과 건물이었습니다.

 

방도 미리 예약을 해두었고, 그 직원분이 그 옆에 맛있다고 추천해준 스테이크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맛집이라네요. 원래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을 만큼 풀로 찼지만, 5시 30분부터 7시까지 식사를 끝낼 수 있으면 7시 타임 예약 손님 오기 전에 먹을 수 있답니다. 그렇게 스테이크 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맛집이라기에 기대를 하고 가기도 했지만, 꽃등심 스테이크와 홍두깨살 스테이크 등 3종 스테이크 모둠을 채소볶음과 함께 시켜서 맥주와 먹으니. 크으. 

 

"이 맛은!!!!"

 

요리왕 비룡에서 심사위원의 입 속에서 한 마리 용이 춤추는 것처럼 소가 뛰어놀고 있습니다. 크으. 진짜 맛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와이프 사무실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집에서 쫓겨 나와서 괴팅엔 대학 수학과 건물로 갔다가 대피처로 갔다가, 다시 와이프 사무실로 오는 토탈 합치면 족히 10km 이상은 되는 거리를 걸었던 지친 나의 육신이 정화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선홍빛 속살이 빛나는 완벽한 미디움의 스테이크. 육즙 가득한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거품이 가득한 맥주와 함께 한 이 저녁 식사는 독일에서 먹었던 역대급 외식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만한, 아니 가히 JMT라고 말할 수 있는 맛집이었습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주변에서 2차 대전의 폭탄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집에서 머물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고, 예정에도 없던 호텔에서 잠을 자게 되었고, 그래서 외식도 하게 되었고.

 

아침에 출근을 나설 그 시간에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하루가, 다사다난한 하루가 노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니 머릿속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할까요?

 

예상치 못했던 지출이 있었지만, 뜻밖에 생각에도 없었던 여행을 한 느낌이었습니다. 덕분에 대화도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웃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집을 잃고 홈리스가 되었지만, 끝은 완벽했던, 더할 나위 없었던 홈리스의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오늘 아침 7시에 눈을 떠서 기사를 확인해보니

 

 

250km짜리 포탄이 발견이 되었고, 포탄에는 굴삭기의 삽의 이빨 모양이 찍혀있었다고 합니다. 불발탄인지 아직도 터지는 포탄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큰 충격이 가해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을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실지로 한 10여 년 전에는 공사현장 굴삭 작업 중에 포탄이 터져서 기사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발견된 포탄은 조심히 운송을 해서 안전한 지역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후 폭발을 시켰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하루 동안 집에 못 들어가게 했던 그 요물체는 저희 동네를 떠나게 되었고, 헤어곽은 아침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크으. 역시 내 집이 제일 좋은 법이여!!

 


 

뭔가 읽으시는데 몰입도가 좋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별 도움도 안 되는, 헤어곽의 일상 이야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에서 짧게 이야기했던 제가 먹었던 그 스테이크 집. 헤어곽피셜, 독일에서 먹었던 레스토랑 중 단연 넘버원 레스토랑이었던 그 스테이크 집. 그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의 포스팅으로 올라올 수도 있고 (안 올라올 수도 있고) 하네요 ㅋㅋㅋㅋ 

 

다시 한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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