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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4/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o헤어곽o 2021. 3. 2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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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분들은 함께 천천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지난 [독일뿌시기#1/4 ~ 2/4]에 이어서 3편입니다. 1편과 2편은 하단 포스팅을 통해서 확인하세요 :-)

1/4 편에는 독일 16개주 중에서 4개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바이에른주, 베를린 그리고 브란덴부르크주)

2/4 편에는 독일 16개주 중에서 4개주 (브레멘, 함부르크, 헤센주 그리고 메클렌부르크포어어포메른주)

3/4 편에는 독일 16개주 중에서 4개주 (니더작센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라인란트팔트주 그리고 자틀란트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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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1/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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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2/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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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3/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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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16개주 설명에 앞서서 여러분께 한번 물어보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의 빈칸을 얼마나 채울 수 있으신가요??

 

 

독일 연방 공화국은 16개의 연방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에는 기본 13개 주와 베를린, 함부르크 그리고 브레멘의 자유도시가 포함된 16개 주로 구성이 되는데요, 인구면에서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가 가장 크고, 면적면에서는 바이에른주가 가장 큰 주입니다. 바이에른 주는 독일 전체 면적의 약 1/5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반대로 3개 도시 주인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을 제외하면 자를란트 주가 가장 작은 주입니다.

 

바이에른 주 등 몇몇 연방주는 그 정치적 통일의 역사가 독일 민족 발생과 때를 같이할 정도로 오래된 것도 있습니다. 한자 동맹의 도시였던 함부르크와 브레멘-브레머하펜은 중세에 경제적 발전이 현저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시 단독으로 한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서는 옛 연방주를 폐지하고 동베를린을 제외한 전국에 14개 구(Bezirke)를 설치했으나, 1990년 동서독 통일과 더불어 1952년 당시의 5개 주(브란덴부르크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작센주·작센안할트주·튀링겐주)로 부활되었고, 동베를린은 베를린 주에 편입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연방과 주의 권한 배분은 전통적인 독일 분권주의를 살려서 기본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입법에 관해서는 연방만이 할 수 있는 사항, 연방과 주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항, 연방이 원칙적 규정만을 만드는 사항 등으로 나뉘어져 규정되어 있습니다. 연방정부에서 하는 일은 외교·군사·우편·철도·통화·관세·통상·사법·전쟁 처리 등인데, 연방법의 집행은 주에 위임되기 때문에 주는 사법상·행정상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독일의 연방주에 대한 설명을 짧게 해보았는데요, 위의 그림에 표시된 총 29개 빈칸 중에 몇 개나 머릿속에 떠오르시던가요? 우선 정답을 알려드리고, 각 주별로 짧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3. 작센 자유주 - Freistaat Sachsen

 


주도 : 드레스덴

면적 : 18,416 km²

 

작센 자유주는 독일 남동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드레스덴이며 면적은 1만 8413km2입니다. 북쪽으로는 브란덴부르크주, 북서쪽으로는 작센안할트주, 서쪽으로는 튀링겐주, 남서쪽으로는 바이에른주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체코,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주는 1918년까지는 알베르트 계 베틴 가의 왕국이었는데요, 이 주의 괴를리츠 시 일대는 1945년 이전까지는 슐레지엔에 있었지만 오데르-나이세선 동쪽 지역이 폴란드 편입으로 작센 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작센 자유주는 1180년까지의 구 작센과 그 이후의 현 작센으로 구분해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 작센(Old Saxony)은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의 오늘날의 니더작센주와 홀슈타인, 그리고 북부 베스트팔렌에 해당하는 지역을 의미하였으며, 현재의 작센주와는 관련이 없는 영토였습니다. 엘베강 동쪽의 땅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이후에 슬라브화되었다가 나중에 중세 이후 동방 식민운동으로 다시 독일화 되었기 때문에 당시 작센은 북독일 그 자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작센(Sachsen)족은 200년경부터 이 영역에 정주했는데요, 독일의 5대 부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바다와 접해 있었기 때문에 해상으로의 진출과 무역도 활발했습니다. 5세기경 작센족(영어명 색슨족)의 일파가 잉글랜드를 정복한 것도 바로 북해 연안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76년 서로마 제국 붕괴 후 여러 게르만 왕국들이 건설될 때, 작센족도 작센 왕국을 건설하였는데요, 이웃에 있는 메로빙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과는 느슨한 관계를 이어갔으나 인접국 관계인만큼 수시로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일찌감치 기독교화된 다른 게르만족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전통적인 이교를 믿고 있었으며, 이르민술이라는 거대한 기둥 혹은 나무를 신성시했다고 한합니다. 이후 7세기경 작센 왕국의 힘은 강성해졌고 이웃 프랑크 왕국과 자주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침공과 보복 침공 등으로 양국 간의 감정의 골이 크게 벌어져 772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 때 작센과 프랑크의 전쟁은 절정을 이루어 근 40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쟁이 이어지게 되죠. 이후 카롤루스 대제는 810년 작센을 평정하고 이곳을 프랑크 왕국의 하위 단위인 작센 공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카를로스 대제 사후 베르됭 조약(843년)을 통해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동프랑크 왕국에서는 왕국의 하위 단위를 구성하는 독일의 5대 부족 공국 중 하나가 되었는데, 다른 4곳은 프랑켄, 바이에른, 슈바벤, 로트링겐이다. 루트비히 왕의 죽음 이후 5대 공작들은 독일 부족 가운데서 차기 왕을 선출하기로 하고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를 새로 국왕으로 선출하였고, 콘라트 1세에 이어 왕으로 선출된 이는 작센 공작 하인리히 1세였다. 하인리히 1세는 독일 왕을 자칭했고 작센 왕조(오토 왕조)가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작센 공작이자 독일 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오토 대제는 황제가 되면서 작센 공위를 빌롱 가문의 헤르만에게 넘겨주게 되는데요. 빌롱 가문 이후 작센 공위는 주플린부르크 가문을 거쳐 1142년 벨프 가문의 하인리히 사자공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이 하인리히 사자공은 선대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 일평생 동안 권력 투쟁을 이어갔으나 1180년 황제에게 패하면서 제국 추방령을 받고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영지가 몰수되고 말았습니다. 1180년 하인리히 사자공이 영지를 모두 몰수당하고 추방되면서 유서 깊은 중세 작센 공국은 공중분해되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 사자공의 가문은 모든 권력과 재산을 잃게 되는데요, 이후 1235년 제국의회에서 바르바로사 황제가 하인리히 사자공과 벨프 가문에 가한 가혹한 조치를 다소 완화하기로 결의하였고, 그리하여 몰수된 영지의 일부가 벨프 가문으로 환수되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는 뒤이어 하노버 공국/선제후국/왕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구 작센 공국의 영지 중 일부는 베스트팔렌 공국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1252년 아슈카니아 가문의 3개의 영토 중 가장 넓은 중부(작센-안할트 주 북부) 땅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이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아슈카니아 가문은 소국으로 축소되었고, 구 작센 땅과도 사실상 무관하게 되었습니다. 아슈카니아 가문의 남은 두 땅은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1260년 가문이 분할되게 됩니다. 북부(홀슈타인의 남동부)는 작센-라우엔부르크로, 남부(비텐베르크)는 작센-비텐베르크로 나누어졌고, 이후 이 두 지역은 치열하게 경쟁하다 결국 작센-비텐베르크쪽에서 작센 선제후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422년 작센-비텐베르크 가문이 대가 끊기면서 작센-비텐베르크 공작위와 선제후 지위는 마이센 변경백인 베틴 가문의 프리드리히 4세에게 주어졌고, 마이센 변경백의 영지를 구성하는 오스터란트(지금의 라이프치히 주변 지역)와 라우지츠·튀링겐 등과 작센-비텐베르크와 합쳐지면서 지금의 작센 주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작센주 문장도 베틴 가문의 깃발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죠. 하지만 1428년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면서 두 아들인 에른스트와 알브레히트의 재산 문제로 인해 결국 동서로 갈라지게 되었고, 알브레히트가 현재의 작센주인 작센 동부인 마이센 변경백령과 북부 튀링겐을 상속받고 이는 작센 주로, 에르스트가 작센 서부인 현재의 작센-안할트 주 지역의 비텐베르크와 남부 튀링겐을 상속받아 이는 튀링겐 주로 이어집니다. 이후 마르틴 루터의 등장으로 루터교회가 비텐베르크(현 작센-안할트) 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547년 루터 사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중앙집권화와 종교 일원화 정책에 개신교 제후들이 슈말칼덴 동맹을 맺어 종교전쟁이 일어나자, 알브레히트계 베틴 가문의 수장이었던 모리츠가 카를 5세의 동생이자 후계자 로마 왕 페르디난트 1세와 동맹을 맺고, 작센 선제후령 수도 비텐베르크 근처 뮐베르크 근처에서 베틴 가문 에른스트 계열 6촌 친척이자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를 위시한 슈말칼덴 동맹군을 격퇴시켜, 1555년 9월 25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제국 의회에서 에르스트계 베틴 가문이 갖고 있던 선제후의 지위와 비텐베르크에서 마그데부르크 할버슈타트 일대의 작센 지역(현 작센-안할트)을 획득하게 됩니다. 17세기에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를 지지하였으나, 구스타브 아돌프가 뤼첸 전투에서 전사하고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스웨덴군이 대패하자, 편을 바꾸어 가톨릭 편인 합스부르크에 붙었습니다. 이에 스웨덴군의 보복으로 인해 많은 참화를 입긴 했으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보헤미아 왕국의 루사티아(라우지츠)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1697년에는 아우구스트 2세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으로 선출되면서 아들 대인 아우구스트 3세 대까지 동유럽의 강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동군연합으로 두기도 했죠. 이후 1804년 나폴레옹에게 빌붙어 작센 공국에서 작센 왕국으로 격상했고, 작센 왕국은 과거 폴란드 왕위를 차지한 것처럼 나폴레옹에게 바르샤바 대공 자리를 제안받아서 형식상 동군연합이 됩니다. 이는 작센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견제용으로 크게 키워보려는 나폴레옹의 전략이었는데요, 1813년 해방전쟁 이후 나폴레옹을 계속 지지한 대가로 1815년에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영토의 북쪽인 비텐베르크, 토르가우, 북부 튀링겐, 라우지츠 대부분을 프로이센에게 할양하였고,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한 독일 연방에 가입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에 발생한 킬 군항의 반란의 영향으로 일어난 혁명으로 국왕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국왕이 퇴위하면서 현재의 명칭인 작센 자유주로 바뀌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때까지 유지하게 됩니다. 1945년 소련군 점령지가 되었고, 나이세강 동쪽 지역은 폴란드 영토가 되는 대신 나이세강 서쪽의 슐레지엔 영토(대표적으로 괴를리츠)를 흡수하였습니다. 이후 동독 치하에서 1952년, 드레스덴, 카를마르크스슈타트, 라이프치히 구(Bezirk)로 나뉘어 소멸되었으나, 통일 직전인 1990년에 부활하였습니다.

 


 

14. 작센안할트주 - Land Sachsen-Anhalt

 

 


주도 : 마그데부르크

면적 : 20,445 km²

 

작센안할트주는 독일 중동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마그데부르크입니다 북서쪽으로는 니더작센주, 북동쪽으로는 브란덴부르크주, 남동쪽으로는 작센주, 남서쪽으로는 튀링겐주와 접한다. 남서부의 산지에는 브로켄 현상으로 유명한 브로켄 산이 있으며, 1947년 소련군정 하에서 프로이센의 작센 지방과 안할트 지방을 합쳐 형성되었습니다. 1952년에 동독의 주 제도 폐지와 함께 사라졌으나, 1990년 독일의 재통일로 주 경계만 약간 바뀐 채 부활하였습니다.

작센안할트주의 역사는 위에 소개했던 작센주의 역사와 일맥상통하게 되는데요, 신성 로마 제국 시기 내 다른 독일 지역과 마찬가지로 안할트 일대는 안할트-데사우, 안할트-쾨텐, 안할트-베른부르크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이 지역은 모두 공국으로 승격되었으나 1860년대 중반 쾨텐과 베른부르크 공국의 후계구도가 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일대는 안할트-데사우 공국으로 통합을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후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을 거치면서 이 일대는 프로이센 왕국에게 포섭되어 독일 제국 내의 공국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됩니다. 1차 대전 패배 이후 안할트 공국에서도 공화정이 선포되고, 안할트는 자유주(Freie Staat)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 편입되었으며, 2차 대전의 패배 이후 이 지역은 미군의 점령 하에 놓였으나, 양측의 합의에 따라 미군은 소련군에게 이 지역을 인도하게 됩니다. 이후 소련군이 프로이센-작센과 안할트 지역을 합치면서 작센-안할트라는 지역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프로이센-작센은 원래 작센 선제후령이었다가, 베틴 가문 장자 계열 에른스트 계열이 1547년 슈말칼덴 전쟁에서 가톨릭 세력에 패망하고 찬탈당하면서 가톨릭 동맹에 합류한 베틴 가문 방계 알브레히트 계열이 대부분 영토와 선제후 지역을 차지했는데요, 1804년 나폴레옹에 의해 작센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나, 나폴레옹에 잘못 줄을 선 대가로 1815년 프로이센에 할양된 작센 왕국의 60%가 이 지역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52년 동독 정부에 의해 작센-안할트는 할레와 마그데부르크 지역구로 해체되었다가, 1990년 독일의 재통일 이후에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던 탓에 전통적으로 작센안할트주는 공업보다는 농업에 의존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거기에 공산정권을 거치면서 경제시설이 완전히 낙후되었고, 여기에 통일 이후 각종 부작용까지 겹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실업률이 20%를 넘기면서 독일 전체에서도 최악의 경제상황을 보여 주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연방정부 차원에서 투자 유치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 지역의 공업화를 추진한 것이 천천히나마 성공해서 현재는 시장경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상황입니다. 작센-안할트주는 크게 보아 마그데부르크와 그 주변을 이루는 평야지대 권역과 남부 하르츠(Harz) 산악지대와 그 주변부, 할레(Halle)와 그 주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독일과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 초기 역사는 모두 이 지역에서 벌어진 것이므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방문할 곳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특히 마그데부르크는 작센안할트 주의 주도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오토 대제가 968년 건설한 엘베강을 낀 대도시입니다. 그래서인지 대외적으로도 오토의 도시라고 홍보하며, 시청 광장에도 오토 1세의 금상이 있습니다. 중세시대 도시 권리 법 중 하나인 마그데부르크 장전이 처음으로 제정되어 독일 북동부와 중부 및 동유럽 지역의 도시 건설 및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도시이며, 중세까지 독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였으나 30년 전쟁 때 말 그대로 초전박살이 난 후 그 전성기는 끝나게 됩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대규모 공업 도시가 되었으나 2차 세계 대전에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맞았고, 통일 후 현재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15.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 Land Schleswig-Holstein

 


주도 : 킬

면적 : 15,763 km²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는 독일 16개 연방주 중 최북단에 있는 주입니다. 1946년 8월 23일 설립된 이래로, 주도는 킬이며 주의 최대 도시입니다. 도시연방주(Stadtstaat)인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주를 제외하면 전체 연방주 중에서 면적이 자를란트에 이어 2번째로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신성 로마 제국이 수립되면서 작센 공작령은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령이 되었고, 1111년 작센 공작의 제후로서 홀슈타인 백작령이 신설되었습니다. 황제에게 대들던 하인리히 사자공이 토사구팽 당한 후 1235년 작센 공작령이 분할될 때 홀슈타인 백작령은 작센-라우엔부르크 공국의 제후가 되는데요, 이후 홀슈타인 백작령은 샤움부르크 가문이 통치하게 되는데 이 가문의 문장이 현재 홀슈타인의 문장과 동일하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문장 우측 빨간 배경의 하얀 별과 섬광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1058년 올라프 1세는 유틀란트 남쪽, 신성로마제국과의 국경지대에 슐레스비히 공작령을 설치하게 되는데, 원래 작위명은 쇠너윌란 공작이었지만, 14세기부터 슬레스비(Slesvig) 라는 도시명이 지역명으로도 쓰이게 되면서 기존 명칭을 완전히 대체하게 됩니다. 이후 홀슈타인 백작령은 분할 상속에 따라 여러 영주령으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다가 1386년 덴마크의 왕 올라프 2세와 그의 어머니이자 섭정인 마가렛 1세가 홀슈타인-렌트스부르크 영주에게 슐레스비히 공작령을 영지 공시 양도합니다. 1390년까지 홀슈타인-렌트스부르크 백작은 상속을 통해 다른 홀슈타인 영주령들을 홀슈타인-렌트스부르크 영주령으로 모두 통합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산되면서 홀슈타인 공작령은 주권지역이 됩니다. 1864년까지 독일 연방의 일원이긴 했지만 여전히 덴마크 왕실의 작위였기 때문에 독일 연방에 덴마크 왕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나폴레옹 전쟁이 불러온 민족주의가 이 지역에서 퍼져나가면서 독일계 거주민이 많았던 홀슈타인과 남부 슐레스비히에서는 프로이센 왕국으로의 통합 움직임이, 덴마크계 거주민이 많았던 북부 슐레스비히에서는 덴마크 귀속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민족적 대립의 와중에 덴마크 왕국의 왕이었던 프레데릭 7세가 1848년 자유주의에 입각한 헌법을 공표하자 이 지역의 독일계 귀족들이 이것에 거세게 반발하였고, 독일계 귀족들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만의 독자적인 헌법과 독일 연방 가입을 덴마크로부터 요구하면서 봉기를 일으키지만 덴마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를 진압하죠. 더 이상 리펜 조약을 지킬 필요가 없는 1863년 프레데릭 7세의 죽음으로 두 공작령이 드디어 분할되게 됩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트리아와 연합하여 덴마크와 전쟁을 치렀고, 덴마크는 결국 패하여 이 일대를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게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에 관한 영유권을 놓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결과 승리한 프로이센이 이 지역을 모두 차지하고 독일 제국을 건설합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체결된 프라하 조약 5항에서는, 북부 슐레스비히에는 덴마크계 거주민이 많았으니 북부 슐레스비히의 덴마크 복귀/프로이센 잔류를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하도록 명시했지만 자기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 뻔했던 만큼 프로이센 측은 이 주민투표를 결코 시행하지 않았었죠. 이후 1876년엔 작센-라우엔부르크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과 병합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주민투표가 시행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였고, 덴마크계 주민들이 상당수 거주했던 북부와 중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에서 1920년 3월 덴마크/독일로의 선택을 놓고 주민투표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북부 슐레스비히 지역은 75%의 지지율로 다시 덴마크로 복귀하기를 선택하였으며, 중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은 80%의 지지율로 독일에 남기를 선택하였고, 영토 반환은 같은 해 6월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확정된 독일-덴마크 국경선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히틀러조차도 이 국경선에 대해서만큼은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붕괴 직전의 나치가 세운 최후의 정부가 이 곳에 있기도 했으며, 이후 영국군에게 점령된 이 지역은 동방 영토에서 온 피난, 추방민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인구수가 폭증하였습니다.

 


 

16. 튀링엔 자유주 - Freistaat Thüringen

 

 


주도 : 에어푸르트

면적 : 16,171 km²

 

튀링엔 자유주는 독일 중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에어푸르트이며 면적은 16,171km²입니다.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작센주, 남쪽으로는 바이에른주, 서쪽으로는 헤센주, 북서쪽으로는 니더작센주, 북쪽과 북동쪽으로는 작센안할트주와 접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튀링겐 지방은 고대부터 게르만족의 왕국 투링기(Thuringii)가 있던 곳입니다. 투링기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헤르문두리(Hermunduri)의 후손들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6세기 프랑크 왕국에게 복속된 후 프랑크 왕국은 그 지방을 그대로 이어 튀링겐 변경백령을 만들었습니다. 튀링겐 변경백은 동프랑크에 속하게 되면서 공작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공작의 대우를 받게 되었으나, 엄밀히 말해 온전한 공작령은 아니었기 때문에 독일의 5대 공국(작센, 바이에른, 슈바벤, 프랑켄, 로트링겐)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908년 튀링겐의 마지막 공작이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죽으면서 작센 공작령으로 흡수되었고, 이후 튀링겐은 후작들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됩니다. 이후 4백년간 수많은 후작과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귀족들에 의해 각축장을 벌이게 되는데요. 초기에는 마이센 변경백이 이 지역의 강호로 군림하다 1002년부터는 바이마르 백작이 권력의 중심을 차지하였으며, 12세기부터는 슈바벤의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이 지역에 손을 뻗치게 됩니다. 이때 튀링겐 지역 서부 일부는 헤센 변경백의 영토로 넘어가죠. 13세기에는 베틴 가문이 튀링겐의 패권을 장악하는데요, 이 와중에 작센 공작령은 엘베강을 넘어 슬라브족을 밀어내며 동부로 영토를 확장해나갔고, 튀링겐 북부와 동부까지 점령하고 개발에 나섰습니다. 황제에게 대들던 작센의 하인리히 사자공이 토사구팽 당한 후 1235년 작센 공작령이 분할될 때 엘베강 서편은 베스트팔렌 공작령과 뤼네베르크-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으로 분할되었고, 엘베강 동편과 중류 지방은 아슈카니아 가문에게 넘어가 작센-비텐베르크와 작센-라우엔베르크로 분열되었습니다. 이후 둘은 누가 작센의 선제후인지를 두고 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 1356년의 금인칙서를 통해 작센-비텐베르크가 선제후를 상속하는 걸로 결론이 나며 작센-비텐베르크는 공식적으로 작센 공작령으로 작위 명칭을 바꾸고 작센 선제후란 작위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죠. 1422년 작센의 공작 알베르트 3세가 자녀 없이 죽으면서 아슈카니아 가문은 단절되고, 마이센 변경백인 베틴 가문의 프리드리히 2세가 작센의 공작위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1428년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하면서 두 아들인 에른스트와 알브레히트의 재산 문제로 인해 결국 영토가 동서로 갈라졌는데요, 장남인 에른스트가 작센 선제후와 작센 서부인 비텐베르크와 남부 튀링겐을 상속받고, 알브레히트가 작센 공작위와 작센 동부인 마이센 변경백령과 북부 튀링겐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에른스트가 상속받은 남부 튀링겐은 4대를 거친 1554년, 요한 프리드리히의 세 아들이 분할 상속하여 에른스트 대공국들(Ernestine duchies) 또는 작센 공작령들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들 영토의 경계는 1572년에 에어푸르트 분할로 재조정되었고, 그 이후의 변화상은 한 공작령의 제후의 대가 끊기면 그 영토를 다른 공작령들이 나눠먹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영토가 이합집산을 거듭합니다 1826년에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령의 대가 끊기면서 영토 재조정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1개 대공국, 3개 공국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작센 공작령들 말고도 튀링겐 지역에는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 로이스 가문의 영토들이 분립해 있었는데요,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은 1599년에 2개로 나뉜 영토가 20세기까지 이어졌고, 로이스 후작령들은 1678년경에는 9개로 분립되다가, 1806년에 2개로 정리되었습니다.
이상의 튀링겐 제국(諸國)이라는 이들 소공국들은 1826년에 8개로 정리되었으며, 북독일 연방을 거쳐 1871년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1910년 당시 총면적 12,325 km2에 159만 명의 인구가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에 발생한 킬 군항의 반란의 영향으로 일어난 혁명으로 일곱 제후들이 모두 퇴위하면서, 1920년 이들 공국들을 모두 합쳐서 현재의 명칭인 튀링겐 자유주로 바꾸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때까지 유지하게 됩니다. 이후 1945년 미군이 점령했으나 종전 이후 소련군 관할 지역이 되었고, 오늘날의 주도인 에어푸르트를 비롯한 노르트하우젠, 뮐하우젠 근교 지방을 흡수하여 튀링겐 주 경계가 이때 대략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동독 치하에서 1952년 에어푸르트, 게라, 줄 지구로 나뉘어 소멸되었으나, 통일 직전인 1990년에 부활하였습니다.

 


 

이렇게 4편으로 나뉘어서 소개한 독일의 16개주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글이 꽤나 길고 어렵죠? 저 또한 이번에 포스팅을 하면서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요, 현재도 연방국으로 나뉘어 있지만, 예전에 각 주가 하나의 왕국(공국)을 이루어 많은 대립을 했던 시대의 역사는 포스팅을 위해 정리를 해놓고도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헷갈릴 정도입니다. 

 

글은 길었지만, 독일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했기를 바라며, 독일 16개주 뽀개보기!! 

이렇게 4편의 포스팅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편은 16개 주를 설명을 제외한 전체적인 개요만 정리해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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