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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2/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o헤어곽o 2021. 3. 15.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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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분들은 함께 천천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지난 [독일뿌시기#1/4]에 이어서 2편입니다. 1편이 궁금하신 분은 하단 포스팅을 먼저 보고 오세요 :-)

1편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바이에른주, 베를린 그리고 브란덴부르크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err-kwak.tistory.com/466

 

[독일뿌시기#1/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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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16개주 설명에 앞서서 여러분께 한번 물어보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의 빈칸을 얼마나 채울 수 있으신가요??

 

 

독일 연방 공화국은 16개의 연방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에는 기본 13개 주와 베를린, 함부르크 그리고 브레멘의 자유도시가 포함된 16개 주로 구성이 되는데요, 인구면에서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가 가장 크고, 면적면에서는 바이에른주가 가장 큰 주입니다. 바이에른 주는 독일 전체 면적의 약 1/5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반대로 3개 도시 주인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을 제외하면 자를란트 주가 가장 작은 주입니다.

 

바이에른 주 등 몇몇 연방주는 그 정치적 통일의 역사가 독일 민족 발생과 때를 같이할 정도로 오래된 것도 있습니다. 한자 동맹의 도시였던 함부르크와 브레멘-브레머하펜은 중세에 경제적 발전이 현저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시 단독으로 한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서는 옛 연방주를 폐지하고 동베를린을 제외한 전국에 14개 구(Bezirke)를 설치했으나, 1990년 동서독 통일과 더불어 1952년 당시의 5개 주(브란덴부르크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작센주·작센안할트주·튀링겐주)로 부활되었고, 동베를린은 베를린 주에 편입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연방과 주의 권한 배분은 전통적인 독일 분권주의를 살려서 기본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입법에 관해서는 연방만이 할 수 있는 사항, 연방과 주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항, 연방이 원칙적 규정만을 만드는 사항 등으로 나뉘어져 규정되어 있습니다. 연방정부에서 하는 일은 외교·군사·우편·철도·통화·관세·통상·사법·전쟁 처리 등인데, 연방법의 집행은 주에 위임되기 때문에 주는 사법상·행정상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독일의 연방주에 대한 설명을 짧게 해보았는데요, 위의 그림에 표시된 총 29개 빈칸 중에 몇 개나 머릿속에 떠오르시던가요? 우선 정답을 알려드리고, 각 주별로 짧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05. 브레멘 프리 한제슈타트 - Freie Hansestadt Bremen

 

 


주도 : 브레멘

면적 : 408 km²

 

브레멘주 또는 공식 명칭 브레멘 프리 한제슈타트(Freie Hansestadt Bremen→자유 한자시 브레멘)는 독일의 연방주로 면적과 인구 모두에서 가장 작은 주입니다. 브레멘 주는 서로 떨어져 있는 브레멘(Bremen)과 브레머하펜(Bremerhaven)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도시 모두 베저 강 강가에 있으며, 브레머하펜은 강 하류 북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도시는 모두 하노버 지방으로 둘러싸여 있죠.

3~4세기 무렵 색슨족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으며 중세 이후에는 프랑크 왕국의 영토에 포함되게 됩니다. 프랑크 왕국이 게르만 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함에 따라 8세기 후반에 최초로 주교가 브레멘에 파견되었으며, 10세기 무렵부터는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무역을 하면서 부를 쌓기 시작하며,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주교에게서 화폐주조권을 인정받게 되고 바르바로사(Barbarossa) 프리드리히 1세에게도 제국 자유 도시(Freie und Reichsstädte)로 지정받으면서 여러 특권들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13세기에 가입한 한자동맹은 브레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브레멘은 명목상으로는 주교 겸 대공의 지배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던 브레멘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은 바로 17세기 유럽을 피바다로 몰아넣은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상인들답게 종교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 브레멘은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시기 중립을 선포했으며, 막대한 부를 이용해 중립을 지키기 위한 용병까지 고용하면서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했지만 베저 강 하구라는 지정학적 요소와 무역으로 쌓아 올린 막대한 부는 개신교와 가톨릭 진영 모두에게 매혹적인 요소였고, 덴마크, 프로이센, 스웨덴, 합스부르크 등등 다양한 세력들이 브레멘을 놓고 충돌하게 됩니다. 특히나 스웨덴과는 공성전까지 벌였으나 브레멘 입장에서는 다행으로 점령만은 피할 수 있었죠. 다만 스웨덴이 포위를 푸는 조건으로 내세운 브레멘을 둘러싸고 있던 각종 요새의 해체와, 라이히스탁으로의 브레멘 대표 파견 금지를 허용하면서 최전성기의 위상을 누리지는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무난무난히 지내던 브레멘을 뒤흔든 것은 나폴레옹 전쟁입니다. 1811년 나폴레옹이 브레멘을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속국으로 놓이게 되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빈 회의에서 다시금 자유도시로의 권리를 인정받고 독일 연방의 일원이 됩니다.

또한 브레멘은, 전통적으로는 해운업이 발달한 곳으로써 독일에서 함부르크에 이은 두 번째 규모의 해항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공업이 발달하여 에어버스의 주요 민항, 군수 부품 공장과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 라인이 입지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종 주류산업 및 노르트제(Nordsee)와 같은 외식업체들도 많이 있습니다. 외식업체는 아니지만 독일 맥주 브랜드 중 몇 안 되는 세계적인 규모의 벡스도 브레멘 연고의 맥주회사이며 양조장도 상당한 규모로 존재할 정도로 경제는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06. 함부르크 자유 한자 시 - Freie und Hansestadt Hamburg

 

 


주도 : 함부르크

면적 : 755 km²

 

함부르크는 독일 북부에 있는 주이며 도시입니다. 독일 최대의 항구 도시이자 제2의 대도시로써, 정식 이름은 함부르크 자유 한자 시(Freie und Hansestadt Hamburg)입니다. 알스터 강, 빌레 강과 엘베 강이 흐르고 있고, 북쪽으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남쪽으로는 니더작센주와 접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기원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950년 즈음에 엘베 강 유역에 함마부르크(Hammaburg)가 건립되고, 중세에는 한자 동맹(Hansa-Städtebund)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현재 독일 연방 정부 조직 형태상 함부르크는 지방 자치주에 해당하고 있습니다.

독일 전체에서 1인당 주민소득 1위를 달릴 정도로 부자동네이기도 한데요,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이른바 '백만장자'의 숫자만 4만 2천 명에 달하는데, 이 숫자는 당연히 독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며 1년 연봉이 백만 유로를 넘는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1천 명이 넘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밖에 3,000개가 넘는 세계 각국의 회사들이 수입과 수출 거래를 위해 이곳 함부르크에 상주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해 95개의 영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부르크는 일찍부터 개방되고 자유로운 도시라는 명성을 갖고 있었으며, 역사학자 에크하르트 클레스만은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유입이 없었다면 함부르크는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함부르크는 옛날부터 외국인이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함부르크가 그의 역사에 빚지고 있는 것처럼, 1952년에 제정된 함부르크 헌법 전문은 명시적으로 도시의 세계 개방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유 한자도시 함부르크는 역사와 지리를 통해 주어진 세계 항구도시로서의 특별한 임무를 독일 민족을 위해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 속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 간의 매개자가 되는 것이다."가 그것이죠.

 

함부르크는 북해와 가까이 있으면서 엘베강 하구를 끼고 있다는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유물도 이미 발견된 바 있는데요, 기원후 4세기부터 6세기까지는 작센족이 이곳에 몰려와 살았으며, 이곳에 작센 부족의 근거지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기원 후 810년 경에 카롤루스 대제가 이곳에 교회를 건립하면서, 그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알스터강이 엘베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하마부르크라는 성을 쌓음으로써 오늘날의 함부르크라는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기원후 831년에는 루드비히 신성왕이 이곳에 교구를 세웠고, 834년에 대교구로 승격되기도 하죠. 그러나 함부르크 대교구는 이미 베르됭 조약 때부터 바이킹들의 출몰로 파괴되었고, 이후에는 슬라브족들이 함부르크에 침입하였으므로, 대주교좌는 함부르크에서 브레멘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12세기에 샤우엔부르크-홀슈타인 공작 아돌프 3세가 이곳 함부르크에 다시 시장을 열었고, 1189년에 프리드리히 1세 황제가 함부르크에 항구로서의 특권 및 무역의 특권을 부여하여 이곳에 대단히 융성한 중세 무역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1241년에 뤼베크와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독일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기초를 굳히고 14세기에 함부르크는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어 북해와 동해 사이의 중개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고, 1510년부터는 도시국가로서의 독립된 주권을 인정받았습니다. 1558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 독일에서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이곳 함부르크에 만들어졌고, 1678년에는 지금의 갠제맑 근처에 독일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건설되어 헨델이나 텔레만 등의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아무런 유혈사태 없이 개신교의 도시국가가 되었고, 1767년에는 함부르크 국립극장이 만들어져, 북유럽의 예술 중심지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07. 헤센주 - Land Hessen

 

 


주도 : 비스바덴
최대도시 :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면적 : 21,100 km²

 

헤센주는 독일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은 니더작센주, 북서쪽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남서쪽은 라인란트팔츠주, 남쪽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남동부는 바이에른 주, 동쪽은 튀링겐주과 인접해 있습니다. 라인강이 남서쪽의 라인란트팔츠주와 경계를 이루고, 라인강의 지류 마인강이 헤센주 남부를 횡단하고 있는데, 이 두 강 유역에 둘러싸인 지역은 남쪽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도 이어지는 완만한 오덴발트 산지를 제외하고는 평야 지대이고, 이 곳에 헤센주의 인구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 주요 도시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프랑크푸르트)과 오펜바흐암마인(오펜바흐), 비스바덴, 다름슈타트 등이 있는데요, 헤센주 북서부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의 외가인 바텐베르크가가 있는 바텐베르크가 있습니다. 반대로 헤센주 북부와 중부 지역은 완만한 산지와 구릉 지대가 펼쳐져 있고, 풀다강 등의 하천 흐름을 따라 좁은 계곡이 산재해 있습니다. 북부의 카셀과 풀다, 동부의 기센 같은 도시가 이와 같은 분지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온난한 기후 덕에 기원전 5만년 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후로 켈트족이 이곳에 살다가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카티족이 이곳에 거주하였습니다. 다만 정황상 이 카티족은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패배 이후 로마군에 의해 추방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로는 프랑크 왕국의 영역에 속하였으며 프랑크 왕국 시기까지는 튀링겐 주와 하나로 통합된 상태이다가 신성 로마 제국의 성립 이후인 13세기에 헤센 방백령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었습니다.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헤센 방백 필리프 1세가 마르틴 루터에게 뻑가면서 개신교로 개종했고, 작센 선제후와 더불어 카를 5세에 대항하는 유력 제후가 되었습니다. 필리프 1세 사후 헤센 방백령은 헤센-카셀 / 헤센-다름슈타트 / 헤센-라인펠스 / 헤센-마르부르크 네 개의 영역으로 분리되었고, 이 중에서도 헤센-카셀과 헤센-다름슈타트가 가장 힘이 강했습니다. 당시 헤센 방백국의 통치자인 필리프 1세가 마르틴 루터가 자식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이행하여 분할 상속하여 네 아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인데요, 이 두 헤센은 사사건건 으르렁거렸는데, 같은 가문이어도 영지 조정 문제를 두고 다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카셀은 루터파에서 다시 칼뱅주의 개신교를, 다름슈타트는 여전히 루터교회를 지지했죠. 심지어 30년 전쟁 기간에도 카셀은 개신교 진영을 지지하고, 다름슈타트는 가톨릭 진영을 지지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헤센-카셀 지역은 1803년 레겐스부르크 제국회의 결과 나폴레옹에 줄 선 대가로 방백에서 선제후로 승격되었으며, 헤센-다름슈타트 지역은 1806년에 헤센 대공국으로 승격됩니다. 그런데 헤센-카셀 지역이 1866년 7주 전쟁에서 줄을 잘못섰다가 망하게 되죠. 이후 헤센 지역의 명맥은 헤센-다름슈타트, 즉 헤센 대공국에 의해 계승됩니다. 북부지역은 명목상 헤센 대공의 통치령이었으나 북독일 연방의 맹주 프로이센에서 보낸 관료들이 통치했기 때문에 프로이센의 영토나 다름없었고, 헤센 대공국이 할 수 있는 거는 이제 얌전히 프로이센의 말을 잘 듣는 것이었고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을 열심히 후원한 데 이어서 직후 탄생한 독일 제국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 이후 1차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독일 내 다른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헤센 대공국도 폐지되고 공화정 형태의 연방 주로 바이마르 공화국에 존속하게 됩니다.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프랑스군과 미군이 이 지역의 점령군으로 주둔하게 되는데, 프랑스가 점령하였던 라인헤센 지역은 서독의 건국과 함께 라인란트-팔츠 주로 편입되었고, 미군이 점령하였던 헤센-다름슈타트와 헤센-나사우 지역은 통합 헤센(Groß-Hessen) 지역으로 합쳐지게 되고, 이 통합 헤센 지역이 바로 오늘날의 헤센 주로 남게 됩니다.

현재 헤센주는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독일 내 금융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습니다. 유럽중앙은행, 독일 연방 은행, 독일 증권거래소, 도이체방크, 코메르츠방크 등등 독일 내 거의 모든 금융 기업이 이 곳에 본사를 두고 있죠. 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역시 일대의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칼 차이스, 라이카, 폭스바겐 등도 이 곳에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꾸준히 재정적으로 풍족한 지역이었습니다. 니더작센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은 20세기 후반 제조업이 조금씩 후퇴하면서 위기를 맞았었고, 반면 바이에른은 1970년대까지 다른 주의 세금을 먹어치우다 이제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남아있습니다.

 


 

08.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 Land Mecklenburg-Vorpommern

 

 


주도 : 슈베린
최대도시 : 로스토크

면적 : 23,174 km²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Land Mecklenburg-Vorpommern)는 독일 북동부에 위치한 주입니다. 주도는 슈베린이지만 로스토크가 가장 큰 도시입니다. 과거 동독 지역으로, 농업과 관광이 주된 산업인데, 특히 이 곳은 호수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북쪽으로는 발트 해, 서쪽으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남서쪽으로는 니더작센주, 남쪽으로는 브란덴부르크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는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여 기존 포메른 지방의 대부분을 폴란드에 할양하게 됨에 따라 신설되었습니다. 할양하고 남은 부분인 포어포메른 지방과 기존의 메클렌부르크 지방을 합쳐 1945년 하나의 주로 통합된 것이죠. 이후 동독이 연방주 개념을 폐지하면서 1952년 이후 해체되었다가 동서독 통일 이후인 1990년 부활하였습니다.

12세기 무렵까지는 슬라브족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었지만 작센 공작 하인리히 사자공(Heinrich der Löwe)에 의해 점령된 이후 기독교 전파 및 게르만족의 이주에 힘입어 서서히 게르만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지역에 살던 슬라브 부족인 아보드리텐의 부족장 니클롯(Niklot)은 30년 동안이나 저항하였다는데요, 니클롯이 죽고 그의 아들 프리비슬라브(Pribislav)는 결국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하인리히의 제후가 되는 것에 동의하면서 메클렌부르크의 영주가 되었고, 1차 대전 종전 전까지 후손들이 영주를 맡았고 아직도 가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스마르는 1229년에 처음으로 도시 지위를 얻은 후 1301년에 메클렌부르크의 영지가 되었고, 이후 뤼베크나 로스토크와 연합하며 메클렌부르크 영주와 힘다루기를 했고 한자 동맹에도 가입하였습니다. 메클렌부르크는 1347년에 공작위로 승급되었고, 17세기 30년 전쟁이 끝난 후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로 북부 영토 일부가 스웨덴에 귀속되기도 하였죠. 1701년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과 메클렌부르크-귀스트로 공국으로 양분되었으며, 18세기에 귀스트로 공국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로 재편성됩니다. 1815년 빈 회의를 통하여 양 공국은 모두 대공국으로 지위가 상승했으며 최소한의 자치권은 유지한 채로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에 편입됩니다. 다만 척박한 토지와 중세적 봉건 구조가 잔재한 관계로 독일 제국 시기 제국 안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의 하나로 남게됩니다. 두 공국은 1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다른 제국 내 왕/공국과 마찬가지로 폐지된 채 공화정으로 변신하고, 여전히 분리된 채로 주의 하나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합니다. 이 둘이 하나로 합쳐진 것은 1934년 나치에 의해서인데요, 이후 2차대전의 패배와 더불어 소련군이 메클렌부르크를 점령하게 되었었습니다. 종전 당시에는 서방측이 메클렌부르크를 점령했으나 포츠담 회담의 합의 사항에 따라 소련군에게 이 지역을 인계하였습니다.

이 주는 독일 내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원래도 별다른 산업 지구가 없었던 곳인데 공산주의 정권 40년과 통일의 부작용을 겪으면서 완전히 황폐화되었던 것이죠. 인구 밀도도 독일 내에서 가장 낮으며, 실업률은 2012년 기준으로 11% 정도로 독일 내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였습니다. (참고로 2012년 바이에른 등 부유한 대도시의 실업률은 3%대였습니다.) 최근에는 정부 차원에서 각종 IT와 BT 산업을 이 곳에 유치시켜 주면서 서서히 경제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2020년에는 실업률이 7.9%로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다만 현재까지는 공업보다는 주민들의 75%가 서비스업을 직장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발트해라는 지리 조건을 이용한 관광업이 주된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3/4편. 독일 16개주 어디까지 알고있니(니더작센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라인란트팔츠주, 자를란트주)

4/4편, 독일 16개주 어디까지 알고있니(작센주, 작센안할트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튀링엔주)는 아래 포스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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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3/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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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4/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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