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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3/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o헤어곽o 2021. 3. 1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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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분들은 함께 천천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지난 [독일뿌시기#1/4 ~ 2/4]에 이어서 3편입니다. 1편과 2편은 하단 포스팅을 통해서 확인하세요 :-)

1/4 편에는 독일 16개주 중에서 4개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바이에른주, 베를린 그리고 브란덴부르크주)

2/4 편에는 독일 16개주 중에서 4개주 (브레멘, 함부르크, 헤센주 그리고 메클렌부르크포어어포메른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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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1/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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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뿌시기#2/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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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16개주 설명에 앞서서 여러분께 한번 물어보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의 빈칸을 얼마나 채울 수 있으신가요??

 

 

독일 연방 공화국은 16개의 연방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에는 기본 13개 주와 베를린, 함부르크 그리고 브레멘의 자유도시가 포함된 16개 주로 구성이 되는데요, 인구면에서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가 가장 크고, 면적면에서는 바이에른주가 가장 큰 주입니다. 바이에른 주는 독일 전체 면적의 약 1/5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반대로 3개 도시 주인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을 제외하면 자를란트 주가 가장 작은 주입니다.

 

바이에른 주 등 몇몇 연방주는 그 정치적 통일의 역사가 독일 민족 발생과 때를 같이할 정도로 오래된 것도 있습니다. 한자 동맹의 도시였던 함부르크와 브레멘-브레머하펜은 중세에 경제적 발전이 현저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시 단독으로 한 주를 이루고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서는 옛 연방주를 폐지하고 동베를린을 제외한 전국에 14개 구(Bezirke)를 설치했으나, 1990년 동서독 통일과 더불어 1952년 당시의 5개 주(브란덴부르크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작센주·작센안할트주·튀링겐주)로 부활되었고, 동베를린은 베를린 주에 편입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연방과 주의 권한 배분은 전통적인 독일 분권주의를 살려서 기본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입법에 관해서는 연방만이 할 수 있는 사항, 연방과 주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항, 연방이 원칙적 규정만을 만드는 사항 등으로 나뉘어져 규정되어 있습니다. 연방정부에서 하는 일은 외교·군사·우편·철도·통화·관세·통상·사법·전쟁 처리 등인데, 연방법의 집행은 주에 위임되기 때문에 주는 사법상·행정상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독일의 연방주에 대한 설명을 짧게 해보았는데요, 위의 그림에 표시된 총 29개 빈칸 중에 몇 개나 머릿속에 떠오르시던가요? 우선 정답을 알려드리고, 각 주별로 짧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9. 니더작센주 - Land Niedersachsen

 

 


주도 : 하노버

면적 : 47,624 km²

니더작센 주는 독일 북서부에 있는 주로, 주도는 하노버이며, 면적은 약 47,624km2입니다. 주의 대부분이 평야 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브레멘주 전체를 완전히 둘러싼 형태입니다. 북쪽으로는 북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와 함부르크, 북동쪽으로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동쪽으로는 브란덴부르크주와 작센안할트주, 남동쪽으로는 튀링겐주, 남쪽으로는 헤센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네덜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니더작센 주는 1946년 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 올덴부르크, 샤움부르크리페 주가 합쳐서 만들어진 주인데요, 주요 도시로는 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 등이 있습니다.

작센(Sachsen)이라는 명칭은 색슨 족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이곳은 홀슈타인과 더불어 원래 작센족이 살던 지역으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정복하기 전까지 작센 왕국이 있던 곳입니다. 810년대에 최종적으로 작센 왕국이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되면서 작센 공작령이 되었고, 이 지역은 크게 서쪽의 베스트팔렌(뮌스터, 파더보른, 올덴부르크), 동쪽의 오스트팔렌(브라운슈바이크, 뤼네베르크 등), 중부의 앙그리아(민덴, 함부르크, 하노버), 북부의 노르트알빙기아(현 홀슈타인)로 구분되게 되었습니다. 작센공작령은 이후 빌룽 가문에게 넘어가며, 동프랑크 왕국을 거쳐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령이자 선제후가 됩니다 작센의 상징은 빨간 배경에 하얀 말, 지금의 니더작센의 문장으로 쓰이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문장에도 베스트팔렌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중세부터 작센 공작령은 동부의 슬라브 족들을 토벌하며 영토를 넓혀갔고, 이에 따라 작센을 부르는 지역이 나날이 커져 갔고 특히 초기 동프랑크 왕국이 지금의 작센-안할트 지역에 크베들린부르크, 막데부르크 등을 건설하고 투자하면서, 작센의 중심지도 점차적으로 엘베강역으로 동진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는 10세기 벨프 가문의 작센 공작이었던 하인리히 사자공 때 절정에 달해 동부로 무한 영토 확장에 나섰고, 잘 나간다며 위아래 없이 막장을 부리던 하인리히 사자공은 상관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의 심기를 건드려 토사구팽 당하게 되죠. 그 이후 일단 작센 공작의 영토가 너무 컸기 때문에 분할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1235년 제국 의회에서 전통적인 작센 지역인 베스트팔렌과 오스트팔렌, 앙그리아는 크게 베스트팔렌 공작령과 뤼네베르크-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으로 분리되었고, 현 작센-안할트와 작센주 지역은 아스카니아 가문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벨프 가문은 뤼네베르크-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을 그대로 가지게 된다. 뤼네베르크-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의 벨프 가문은 후일 하노버 가문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국의 왕위를 잇습니다. 아스카니아 가문에게 넘어간 지역도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령과 작센-비텐베르크로 나뉘게 됩니다. 하인리히 사자공이 추방된 후 작센 공작령이 3개로 분리될 때 실제로는 가문 간 알력, 분할상속, 강력한 권력의 부재로 더 많은 소국들이 파생되었습니다. 우선 주교령들은 모두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각각 주교, 대주교령이었던 파더보른, 뮌스터, 힐데스하임, 브레멘, 함부르크는 별개였으며, 각각 1101년과 1111년 작센 공작의 제후 령으로 설립된 올덴부르크 백작령, 흘슈타인 백작령과 샤움부르크-리페 또한 분리되었고, 올덴부르크는 아예 처음부터 작센 공작과 분리되었으며, 홀슈타인 백작령은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령의 제후령이 되었다가 공작령으로 신분상승하며 샤움부르크-리페는 후일 현대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로 통합됩니다. 브레멘과 함부르크는 훗날 제국자유도시로 승격되고 한자 동맹으로 독립적인 행보를 나아가게 되죠.
니더작센이란 명칭은 16세기에 신성 로마 제국의 단위 지역 명칭으로 등장하기 시작핣니다. 당시엔 브레멘과 함부르크, 뤼네베르크-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메클렌부르크 공국, 홀슈타인 공국, 작센-라우엔부르크 공국이 이 지역에 포함되었는데요. 작센-비텐베르크와 브란덴부르크, 안할트, 포어포메른 등이 오버작센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작센-라우엔부르크와 작센-비텐베르크는 작센 선제후의 승계를 두고 알력 다툼을 했는데, 결국 작센-비텐베르크가 승리하여 1356년 작센 선제후로 공식 명칭을 바꾸게 됩니다. 이후 베틴 가문으로 작위가 넘어간 후 1806년에 작센왕국이 되었고, 그래서 현 작센 주의 문장은 베틴 가문의 상징물을 그대로 가져다 쓰게 된 것이죠. 현재의 니더작센 주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홀슈타인으로 분류되는 작센-라우엔부르크나 따로 분리되는 메클렌부르크가 포함되어 있고, 올덴부르크와 오스나브뤼크는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중세 시기의 니더작센 개념과 오늘날의 니더작센 주의 개념은 조금 차이가 존재했다는 것이죠. 

이후 하노버 가문으로선 또 다른 복권에 당첨되는데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부인, 팔츠의 소피아는 영국의 왕 제임스 1세의 외손녀였는데, 앤 여왕을 마지막으로 제임스 1세의 직계 스튜어트 가문이 끊기게 된 것입니다. 앤 여왕에게는 이복동생이 있었으나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영국 왕위를 이어받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영국 왕위 승계권이 소피아를 통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들 게오르크 루트비히에게 가게 되었던 것!!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아버지에 이어 1698년에 하노버 선제후를 상속 받았고, 1714년 앤 여왕이 죽어 영국 왕위도 얻음으로서 조지 1세가 되었습니다. 하노버 선제후는 조지 1세 때부터 하노버 가문의 영국 왕실이 가지게 되었고, 조지 1세의 고손자 조지 4세가 조지 3세의 섭정 시절 빈 회의에 참석해 하노버 선제후의 공작위를 왕국으로 급을 높이는데 유럽 열강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어, 1814년에 하노버 왕국이 수립되어 동군연합이 되었습니다. 동군 연합을 사랑하는 영국. 이 때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도 하노버 왕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동시에 뤼네베르크-브라운슈바이크 공작령의 일부였던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으로 독립되었죠.
하지만 1차 세계 대전 이후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은 구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올덴부르크 대공국 및 자잘한 주교령 영토를 모두 프로이센 지방으로 분류하였고,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이 패망함으로써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분할 통치에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영국과 깊은 관계가 있던 지역이었기 때문인지 이곳은 영국이 통치하게 됩니다. 1946년 8월 영국 정부는 구 하노버 왕국 지역을 프로이센 지방에서 분리해 하노버를 주도로 하는 하노버 주를 신설하였는데요, 하노버 주의 초대 주총리였던 하인리히 빌헬름 코프는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올덴부르크 공국 지역과 주변 다른 지역들도 합병해 니더작센 주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코프의 주장은 사실 이미 1920년대부터 나오던 행정구역 개혁안을 토대로 한 것이었고, 실제 생활권이나 경제권에 부합했다. 브레멘도 니더작센에 합병하려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나, 당시 브레멘 시장이 미국을 찾아가 브레멘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고 전통적으로 하노버와는 독립적인 지역이었음을 강변해 브레멘은 별도의 주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군의 군정 통치지역은 독일 남부지역이었으나 미군의 병참선(해운)유지의 필요성으로 브레멘시는 미국에 넘겨졌습니다. 결국 영국 군정은 1946년 11월 브라운슈바이크와 올덴부르크 지역을 하노버주와 합병한 뒤 니더작센 주를 출범시키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니더작센에 거주해서 그런지, 알아보면서 니더작센과 하노버에 연관된 역사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니더작센 주는 농업과 광업의 비중이 큰 주입니다. 북부 지역은 토질이 거친 관계로 작황이 힘들어 초원을 이용한 목축업이 발달했으며 남부 지역은 황토 토질을 이용한 감자, 귀리, 사탕무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하노버와 그 근교는 승마, 마장마술 등을 위한 말로도 유명한데, 경종마 중 하노버리안이란 종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니더작센 주의 기와 문장에 말이 들어가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이 지역 영주가 대대로 투자해온 사업이기도 하거니와 영국에 하노버 왕조가 들어서고 나서는 영국 상류 사회에도 적극적으로 소개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현재 하노버가 박람회로 유명해진 계기 또한 공업 이전에 말과 관련된 산업 덕분이라고 합니다.

광업의 경우에는 특히 남부의 하르츠(Harz) 지방을 중심으로 12세기에 이미 은광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했고 오늘날에는 철광석과 갈탄을 활발히 채굴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가끔식 해외토픽으로 소개되고는 하는 소금 광산도 이 곳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원유도 나온다고 합니다. 디젤 관련 기술이 맨 처음 개발될 당시 원유 채굴과 처리 기술들은 모두 이 부근에서 실험되고 실전되면서 발전되었습니다. 현대에는 다만 채산성이 낮아서 더이상 거의 뽑지는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첼레(Celle)지역에 가면 석유가 그냥 땅위로 새어 나오는 곳들도 여럿 있습니다. 
20세기 이후로는 제조업도 크게 발전하였는데, 그중 자동차 산업이 가장 주목할 만합니다. 볼프스부르크에는 지금도 폭스바겐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하노버에도 수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설립되었었는데 자동차 산업이 막 시작될 때였던지라 경쟁에 치여 도산하는 회사들이 많았고 다른 회사에 흡수합병되기도 하였죠. 현재 자동차 부품 회사인 콘티넨탈은 여전히 하노버에 위치해 있습니다.

 


 

10.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 Nordrhein-Westfalen

 


주도 : 뒤셀도르프

면적 : 34,084 km²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는 독일 북서부에 있는 주입니다. 주도는 뒤셀도르프이며,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니더작센주, 남동쪽으로는 헤센주, 남쪽으로는 라인란트팔츠주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네덜란드, 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과거 루르(Ruhr) 공업지대가 위치했던 주로서, 이 루르 지역은 석탄이 풍부하여 경제와 공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때문에 중산층과 서민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이 특히 많이 생활하여, 오랜 기간 동안 사회민주당의 아성(1966~2005)이었다가 2005년부터 기독교 민주연합(자민당과의 연립정권)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라인강변의 라인란트 지역은 일찍이 문명이 발달한 곳으로, 로마 제국 시절엔 로마가 속주 도시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규모였던 속주(Colonia)가 지금의 쾰른(Köln)이 되었죠. 다른 게르만 족과의 국경을 이루는 지점이 라인강이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군사적인 목적이 강했지만 무역의 역할도 하게 되면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프랑크 왕국이 들어서자 카롤루스 대제는 아헨을 그의 통치 중심지로 삼아 왕궁과 성당을 세웠고, 쾰른과 트리어, 마인츠에 3개 대주교구를 설치하였습니다. 이 곳은 나중에 신성로마제국이 세워질 때 카톨릭측의 선제후가 될 정도로 강력한 제후들로 성장하게 됩니다. 샤를마뉴는 작센족과 전쟁을 하면서 작센 왕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파더보른(Paderborn)에는 주교령을 설치하였고, 작센 왕국의 서부엔 작은 선교구로서 후일 뮌스터(Münster) 주교령이 되는 뮌스터란트(Münsterland)를 설치하였습니다. 결국 작센 왕국이 끝내 정복되고 그 곳은 프랑크 왕국의 작센 공작령이 되었는데요, 베르됭 조약으로 인해 프랑크 왕국이 분할되면서 라인란트와 그 동부는 모두 동프랑크, 지금의 독일이 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 들어선 이후 라인란트는 수십개의 백작, 주교령들로 분할되었고 그 와중에 중프랑크, 즉 로타링기아도 분열되면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는 말 그대로 땅따먹기의 각축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주요할 만한 공작령으로는 뒤셀도르프 중심의 베르크(Berg) 공작령, 쾰른과 아헨 사이의 율리히(Jülich) 공작령, 네덜란드와의 국경지대에 있던 클레베(Kleve) 공작령이 있었는데요, 라인강은 무역에서도 매우 중요한 수로로 이곳을 지나가는 무역단은 토지 소유자들에게 통행세를 지불해야했기 때문에 더욱더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 라인강변은 말그대로 산봉우리 건너 성이 하나씩 들어설 정도로 빽빽해졌습니다. 아헨과 쾰른은 일찍이 제국자유도시로 지정되어 무역거점으로 혜택을 누리게 된었죠. 쾰른 대주교는 황제의 도시에서 거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쾰른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궁전은 쾰른으로부터 25km 떨어진 남부의 작은 마을에 두었는데 그 마을이 지금의 본(Bonn)이 됩니다. 이후 16세기 종교개혁이 터지면서 베스트팔렌 지역에도 개신교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습니다. 17세기 들어 이 지역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영토로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개신교 세가 더 강해져 주류가 되었는데, 전통적으로 카톨릭이 강했던 뮌스터와 파더본만이 그나마 예외였죠. 결국 30년 전쟁이 터졌고, 뮌스터와 오스나부뤼크에서 개신교와 카톨릭 두 세력이 평화 협정인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전쟁이 끝이 납니다.
이후 1792년 프랑스 혁명 전쟁의 결과로 라인란트 지역은 프랑스에게 복속되었는데, 바젤 조약으로 이 지역의 제후들은 라인 동맹을 형성하게 됩니다. 라인 강변의 많은 성들이 폐허가 된 시점도 이때이다. 이 시기에 이 지역엔 계몽주의 사상이 유입되면서 나폴레옹 법전, 관료주의, 사법체계, 새로운 경제 제도 등이 들어왔고 구시대적인 봉건제도는 철폐되게 되었고, 종교 개혁 이후에도 여전히 카톨릭 신자가 많던 라인란트는 이 때에 자유로운 분위기에 따라 개신교 인구도 크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미 1609년에 클레베 공작위를 가지게 된 프로이센은 빈 회의를 통해 저지라인란트(라인란트 북부) 즉 지금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라인란트 지역과 베스트팔렌을 통째로 프로이센 왕국에 편입시켰습니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 라인란트 지역에선 아예 독일군 주둔이 금지당하게 되었는데요, 1920년에는 프랑스의 영향으로 자를란트가 아예 라인란트에서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라인란트 동부 지역 일부가 벨기에로 편입되기도 하였습니다 현 벨기에의 독일어 사용 지역은 과거 라인란트였던 곳. 그리고 1936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강 너머로 독일 군을 전진시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라인란트는 3곳으로 분할되어 비스바덴과 같은 남동부 일부는 헤센으로 편입되고, 라인란트는 남북 반으로 잘려, 북쪽은 베스트팔렌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존재감 없는 리페(Lippe)와 합쳐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이, 남쪽은 팔츠 지역과 합쳐져 라인란트-팔츠가 되었습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이때에 새로운 주도로 뒤셀도르프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후 라인란트 북부의 루르 지방은 석탄과 같은 지하 광물의 개발과 더불어 운송에 유리한 지리적 장점에 힘입어 대규모로 공업화가 이루어지게 되었죠. 하지만 이후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독일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된 것. 자연스레 노조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1980년대에는 환경문제의 심각화로 녹색 운동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11. 라인란트 팔츠주 - Land Rheinland-Pfalz

 


주도 : 마인츠

면적 : 19,847 km²

 

라인란트 팔츠주는 독일 남서부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북동쪽과 동쪽으로는 헤센주, 남동쪽으로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남쪽으로는 자를란트주와 접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쪽으로는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으로는 룩셈부르크, 북서쪽으로는 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독일 최대의 독일준령(Deutsche Mittelberge)과 라인 강이 서로 십자가 모양 비슷하게 주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습니다.

라인란트 팔츠주는 현 없이 바로 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24개 군과 마인츠, 코블렌츠 등의 12개의 군급도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지역의 주요 도시는 마인츠, 트리어, 코블렌츠, 카이저슬라우테른, 보름스 등으로, 모두 신성 로마 제국 시대 아니면 로마 제국 시대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대단히 유서깊은 도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중세에는 궁정백 중 가장 강력했던 라인 유역 팔츠의 궁정백이 선제후로 군림하는 등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죠.
다만 라인란트-팔츠라는 지역은 전통적인 독일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지방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독일을 4등분한 연합국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입니다. 전통적으로 바이에른 왕국의 영토였던 팔츠 지역 및 라인란트의 남쪽 일부 지방에다가, 헤센 대공국의 영토 일부였던 라인헤센(Rheinhessen)과 프로이센 왕국의 행정구역 중 하나이던 헤센-나사우 등을 합쳐서 1946년 8월에 신설되었죠. 때문에 독일의 다른 주와 같이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독일의 수출 제품중 약 50% 가량이 이 곳 라인란트-팔츠 지역에서 생산될 만큼 산업이 잘 발달해있습니다. 특히나 중소기업들이 이 곳 경제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데, 이들 중소기업은 화학공업, 보석가공업, 로봇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또한 농업도 활성화됐는데, 특히나 모젤 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포도 및 와인이 유명합니다.

 


 

12. 자를란트주 - Saarland

 


주도 : 자르브뤼켄

면적 : 2,569 km²

자를란트주는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연방주로써, 주도는 자르브뤼켄입니다. 자유도시주(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면적이 작은 주인데요, 주 이름은 모젤 강의 지류로 주를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자르 강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라인란트팔츠주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프랑스, 서쪽으로는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원래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이전까지 자르 지방은 프로이센, 바이에른, 올덴부르크의 영지로 나눠어져 있었고, 이 지역을 총칭하는 특별한 지명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베르사유 조약에서 이 지역을 독일에서 분리할때 이곳을 지칭하기 위해 이곳의 지리학적 명칭을 사용하여 자르 분지 지역(Saarbecken gebiet)이라고 지칭했고 여기에서 자를란트(Saarland)라는 지명이 확립되어 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이 지역을 프랑스 영토의 일부분으로 삼는데 성공하는데요,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1814년 파리 조약에서 프랑스의 1792년 국경을 기준으로 프랑스 영토를 줄이는 와중에서도 자를란트 지역은 프랑스령으로 남을 뻔 했으나 빈 회의도중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하여 1790년 1월 1일 현재 국경으로 프랑스 영토를 축소시키기로 합의 결국 백일천하 후 이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과 바이에른 왕국의 영토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폴레옹 3세시절이었던 프랑스는 1865년경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 기운이 감지되자 우호적 중립을 대가로 자를란트를 요구했으나 비스마르크는 애매한 답을 내놓으며 프랑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되 프랑스의 우호적 중립은 유지시켰고, 이로 인해 빚어진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의 갈등은 보불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전쟁은 프랑스의 패배로 끝났고, 자르 지역은 이 전쟁의 결과 세워진 독일 제국의 영토로 남았습니다. 자르(Saar)라는 독립된 지역 개념은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에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자르 분지 지역이라는 이름의 국제연맹 감독하 자치지역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르 지역의 풍부한 석탄, 철강석 등의 자원 때문에 프랑스는 침략국 독일의 영토인 이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삼고자 했고, 영국의 동의까지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죠. 그러나 당시 미국으로 대표되는 협상국은 민족 자결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기에 독일계가 대다수였던 인구구성을 무시할수 없었고, 결국 미국의 제동으로 한발 물러서 1920년부터 15년간의 국제연맹 관할이 결정되었습니다. 
자를란트는 명목상 국제연맹 관할이었지만, 사실상 프랑스의 관할이었습니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인 출신 위주로 구성된 군대를 진주시켜 자르 지역에 주둔시켰으며 이 지역의 석탄과 철강을 사용했죠. 또한 자르 지역을 프랑스에 동화시키기 위해 프랑스어 공립학교를 설치하고, 1923년부터 프랑스 화폐만을 사용하도록 하였고, 1925년 1월 10일에 프랑스 관세 지역에 통합시키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그에 반발한 이들이 1925년 6월 19일에 주도 자르브뤼켄에서 4만여명 규모의 독일 영토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는데요, 자르 지역의 모든 정당은 독일로의 귀속을 지지하였죠. 프랑스에선 투표가 일어나면 독일로의 합병이 뻔했기 때문에 투표 연기나 뭉개기 전략으로 외교전을 폈으나 결국 국제연맹의 관할이 종료되는 시점인 1935년 1월 13일 독일로의 귀환 문제에 관한 주민투표 자르 국민투표가 실행되었고, 투표 결과 독일 합병 91%, 국제연맹 잔류 8%, 프랑스 합병 1%로 독일로의 복귀가 결정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극초반에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이 일시적으로 이곳 자르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형식상이나마 자신들이 폴란드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대략 10km 가량을 전진하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요새화된 기지로 돌아오는 가짜전쟁이 일어납니다. 이후 프랑스 침공이 독일의 승리로 끝난뒤 자르 지역은 일시적으로 알자스-로렌과 같은 행정구역으로 편입되기도 했으나, 독일이 패망한 후 이 지역은 미국 관할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풍부한 석탄과 철강 자원은 프랑스가 지속적으로 군침을 흘렸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는 이곳을 프랑스의 영토로 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종전 후 자르는 미군 관할지역 내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프랑스는 자르 보호령으로 만들었죠. 그러나 프랑스가 NATO 탈퇴로 외교적으로 고립되자 서독에서는 프랑스를 구슬려서 석탄 채굴권을 프랑스에 보장하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자를란트를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를란트를 공화국으로 독립시키자는 안을 서독 정부에 제안했고 서독 정부에게 이에 대한 합의를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1955년 자를란트를 공화국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찬성 32%, 반대 68%로 기각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독일의 경제 성장을 긍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죠. 이는 자를란트 주민들이 사실상 독일로의 귀속을 원한다는 결과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1956년 독일과 프랑스는 룩셈부르크에서 자를란트를 독일로 반환하는데 합의했고 1957년 자를란트는 독일의 연방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프랑스의 석탄 독점 채굴권은 1970년대까지 지속되죠.

경제적으로는 1873년 세계 최초의 현대식 제철소로 건립되어 유럽 산업화의 상징물로 유명세를 떨쳤던 푈클링어 제철소(Völklinger Hütte)가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을 정도로 과거에는 석탄 및 철강 산업이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이들 산업이 유럽 내에서 점차 사양세를 걷게되면서 지역 성장동력도 함께 둔화되어 현재까지도 독일 내 구서독 지역들 중에서 물가 및 소득수준 등의 경제력이 가장 떨어지는 편에 속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990년대 들어서 부터 주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전자, 컴퓨터, 바이오 등의 첨단 산업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을 내세우며 기업체 및 연구소 투자 유치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의 결과물들로서 1990년대 후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유럽연구소가 자르브뤼켄에 설립되어 자를란트 대학교와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한독간 학술연구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일 보쉬 렉스로스에서 Industry 4.0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프로젝트의 연구를 위해 자르브뤼켄 인근 홈부르크 공장에 최첨단 생산시스템을 대규모로 투자해 운영중에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 16개주 소개 마지막편 4/4는 아래 포스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err-kwak.tistory.com/503

 

[독일뿌시기#4/4]독일 16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독일은 16개 주(독일어: Land)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 공화국입니다. 주의 정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 - 분데스란트)인데요, 여러분들은 독일의 16개 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궁금하신

herr-kwak.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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