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r.Kwak_일상/독일에서 이모저모

[덩케르크 구출 작전] 33만명의 연합군을 구한 인류 최대의 구출 작전.

o헤어곽o 2020. 12. 2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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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num=198110]

 

다이나모 작전이라고도 불리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30만 명이 넘는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 병사들이 독일군으로부터 탈출한 작전입니다. 물론 이 작전이 순탄하게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독일 공군들의 공습은 쉼없이 이어졌으며, 독일군 스파이들은 연합군 속에 숨어들어 혼란을 일으키거나 포격 위치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독일군은 히틀러의 재진격 명령이 떨어지자 무섭게 덩케르크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철수작전은 단 9일만에 이루어집니다.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1O6k0levXC0]

이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당시 폴란드를 점령한 후, 프랑스로 진격하던 독일군의 상태와 히틀러의 선택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겠네요.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프랑스 및 중립국이었던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 대한 선전포고 및 공격을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부터 독일과 프랑스의 서부전선은 치열하기로 유명하였는데요, 당시 한 세대가 사라지다시피 한 인명피해를 입은 프랑스군은 앙드레 마지노 장군의 제안으로 350km에 달하는 마지노선이라는 대규모 방어라인을 구축합니다. 때문에, 이를 통해서는 독일군이 진격하기 힘들었고 연합군은 벨기에 국경으로 독일군에 대항하는 병력을 집중시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이를 역이용하여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사이에 있는 아르덴 고원을 통해 기갑부대를 진격시키죠. 해발 350m에 이르는 아르덴 고원은 숲이 울창하고 지형이 험준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이를 통해서 진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연합군은 급속도로 밀리게 됩니다.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라는 전략의 프랑스군은 마지노선에 주력부대를 배치하여 독일군의 공습에 방어를 하였는데, 역으로 아르덴고원으로 진격해오자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독일군은 프랑스와의 국경에 2선급 부대를 배치하여 마지노선의 병력을 묶어두는 데에도 성공을 합니다. 결국 주력군이 마지노선에 묶여있던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진격을 버틸 수 없었고, 독일 기갑부대는 프랑스 북부 솜강을 따라 영국 해엽에 도달합니다. 수십만명의 연합군 병력은 독 안에 든 쥐 신세로 완전히 포위당하게 됩니다. 독일군은 덩케르크를 포함하여 칼레, 불로뉴 등의 해안도시로 진격하여 연합군의 철수를 방해하려는 전략을 펼칩니다. 독일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던 연합군은 칼레와 불로뉴를 내주고 덩케르크에 고립되고 맙니다.

[사진출처 : https://namu.wiki/w/Operation%20Dynamo]


[사진출처 : https://www.facebook.com/gyoyubooks/posts/1402441183126305/]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과의 전쟁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영국의 수상 처칠은 대규모 철수 작전을 준비합니다. 이것이 바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 다이나모 작전입니다. 하지만 이 작전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습니다. 독일군의 진격 속도를 감안한다면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하지만, 연합군 입장에서는 기적이 발생합니다.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OfHrOYRdVyQ&t=566s]

1940년 5월 24일. 아돌프 히틀러는 전 군에게 „공격을 멈추고, 현 전선을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명령은 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바꾸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명령이 되고 맙니다. 이 명령 하나로 연합국은 덩케르크를 중심으로 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자국 내에서 해군 및 BBC를 통한 방송으로 각종 배들을 징발하여 철수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죠. 이 진격 중지 명령에 대한 이유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m.blog.daum.net/mybrokenwing/722?np_nil_b=1]

이 명령은 히틀러 혼자만의 독단적인 명령이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의견인데요, 첫 번째로, 보병과 기갑부대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두 번째로, 전차의 기계적 문제로, 그리고 세 번째로 공군 원수 괴링의 조언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당시 독일의 기갑사단은 동부전선에서 폴란드와의 전쟁을 치른 후 바로 서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전쟁을 계속하여 왔기에 손실과 피로감은 어마어마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또한 보병과 기갑부대 사이의 넓은 간격은 연합군의 반격에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연합국의 병력과 무기들은 독일군에 비해 압도적인 상황이었던 것이었죠. 낫질작전으로 서부전선의 승기를 독일이 잡긴 했지만, 연합군의 병력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고,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지난 1차 세계대전과 같은 결말이 나올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연합군의 거센 저항과 반격으로 기갑부대의 손실 또한 어마어마하였습니다.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Gerd_von_Rundstedt]

결국, 5월 23일 독일의 사령관 폰 룬트슈테트는 진격 중지를 명령하고 히틀러에게 진격을 잠시만 중지하고 병력을 추스르자는 제안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가 독일을 완전히 장악하고 전쟁에 뛰어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독일 육군 총사령부와 히틀러의 의견 충돌을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그 충돌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교리를 선호하는 보수파 군인들과 기동전을 통한 섬멸전을 주장하는 진보파 군인들로 나뉜 군 자체의 대립도 존재하였죠. 이러한 상황속에서 히틀러의 진격 중지 명령은 내부 상황을 수습함과 동시에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보입니다. 추가적으로는 히틀러가 추후 영국과의 평화협정을 위한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진격을 중지시켰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 정부의 회의록에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독일과 평화협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7888]

이러한 독일군의 상황 속에서, 5월 26일 다이나모 작전은 시작됩니다. 5월 27일 영국은 BBC 방송을 통해 소형 선박 확보에 주력을 합니다. 대형 선박으로 탑승시키기 위해 해안에서 수송작업을 수행할 다수의 소형 선박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유람선, 보트, 요트는 물론 낚싯배와 구명정까지 가릴 것 없이 모았고, 5월 27일 밤에 이렇게 모인 6만 여척의 소형 선박과 200척이 넘는 영국 해군선이 덩케르크로 출발을 합니다. 또한, 영국 남부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빛을 발하였죠.

 

[사진출처 : https://slownews.kr/64807]

독일군은 26일부터 공군을 통한 공습을 진행하였고, 영국군은 슈퍼마인 스핏파이어를 필두로 하여 독일군에 맞서 구출작전을 엄호합니다. 다행히도 5월 28일은 짙은 안개로 인해 독일군의 공습이 중단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gameplayblog.tistory.com/123]

하지만 5월 29일 안개가 걷힌 후 독일군의 기습 공습으로 인해 영국군은 구축한 10대를 포함한 많은 선박을 잃게 됩니다.

 

[사진출처 : https://mild-nature.kr/71]

하지만 5월 31일과 6월 1일 양일간은 독일군의 무차별적인 공습에도 13만 명이 넘는 인원을 구출하는 데에 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선박 11척이 파손되고 31척이 침몰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사진출처 : https://mild-nature.kr/71]

6월 2일 덩케르크 외곽에 남아있던 연합군 전원 탈출 작전을 감행합니다. 80여척에 달하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의 선박이 항구에 도착해 병사들을 구출합니다. 그리고 6월 3일. 계속해서 교전을 벌이며 독일군에 맞서던 프랑스 군 2만 6천여명을 구출하는 데에 성공을 합니다.

 

[사진출처 : https://worldofwarships.asia/ko/news/history/history_dunkirk/]

이렇게, 6월 4일 다이나모 작전은 종료됩니다.

 


[사진출처 : http://blog.daum.net/juju3ju/15718343]

결과적으로 연합군은 많은 물자와 전투장비를 그대로 해안에 버린 채 철수를 하여야 했고, 엄호하던 영국 공군의 손실 또한 어마어마했으며, 프랑스의 함락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덩케르크 구출 작전을 통해서 33만 8226명의 병력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OfHrOYRdVyQ&t=566s]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던 대규모 구출 작전은 30만 명이 넘는 병력을 구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일부 학자들은 이 작전이 완전한 성공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연합군 주력 병력들을 무사하게 구출하였고, 이를 통해 영국 국민들의 단합을 이끌어내어 추후 이어지는 전쟁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덩케르크 작전 이외에도 영국군은 아리엘 작전을 통해 19만 명의 연합군을 구출하는 데에 성공하는데, 이렇게 구출된 병력들은 재정비를 통해 자시 전선에 투입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독일의 패망을 앞당기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oonho1202&logNo=22188345748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사진출처 : https://brunch.co.kr/@robintoto/4]

반면에 독일 수뇌부는 프랑스 함락의 승리에 너무 일찍 취해버렸고, 덩케르크 구출 작전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독일의 패전을 앞두고, 수많은 독일의 지휘관들은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후회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2차 세계대전에 중요한 사건이었던 다이나모 작전, 덩케르크 구출작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전체적인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에서 확인하세요.

herr-kwak.tistory.com/286?category=883691

 

제 2차 세계 대전. 다방면에 걸친 그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자.

독일 하면 아직까지 빼놓을 수 없이 연계되는 이미지는 세계 대전의 패망국이자 주축국이라는 것인데요. 아돌프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를 배출한 그 제2차 세계 대전. 수많은 사전 원인들과,

herr-kwak.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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