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 정식 명칭 :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 V.
- 애칭 : Der FCB (에프체베) / Die Bayern (바이에른인) / Stern des Südens (남쪽의 별) / Die Roten (빨강) / Rekordmeister (기록 챔피언) / Bayern (바이언) / Deutschermeister (독일 챔피언)
- 창단일 : 1900년 02월 27일
- 연고지 : 독일 바이에른주 오버바이에른현 뮌헨 (München, Oberbayern)
- 홈구장 : 알리안츠 아레나 (Allianz Arena)
- 슬로건 : Mia san mia ('Wir sind wir'의 오스트로바이에른어. 해석하면 '우리는 우리일 뿐'이라는 뜻. 누가 뭐래도 우리는 우리라는 의미입니다.)
- 회장 : 헤르베르트 하이너 (Herbert Hainer)
- 부회장 : 발터 메네케스 (Walter Mennekes), 디터 마이어 (Prof. Dr. Dieter Mayer)
- 명예회장 : 커트 란다우어 (Kurt Landauer), 프란츠 베켄바워 (Franz Beckenbauer), 울리 회네스 (Uli Hoeneß)
- 사장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Karl-Heinz Rummenigge)
- 단장 : 하산 살리하미지치 (Hasan Salihamidžić)
- 감독 : 한지 플리크 (Hansi Flick)
- 주장 :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 부주장 : 토마스 뮐러 (Thomas Müller)
- 2020/2021 시즌 유니폼
(역대 유니폼은 하단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우승 기록
→ 독일 챔피언십 1회
→ 가우리가 쥐트바이에른 1회
→ 분데스리가 1부 29회 (최다 우승 기록)
→ DFB 포칼컵 20회 (최다 우승 기록)
→ DFL 슈퍼컵 8회 (최다 우승 기록)
→ DFB 리가포칼컵 6회 (최다 우승 기록)
→ UEFA 챔피언스 리그 6회 우승
→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
→ UEFA 유로파 리그 1회 우승
→ UEFA 슈퍼컵 1회 우승
→ 인터컨티넨탈컵 1회 우승
→ FIFA 클럽 월드컵 1회 우승
→ 트레블 2회
- 역대 문양 변화
UEFA 3대 메이저 대회 우승(UEFA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그리고 현재는 폐지된 위너스컵), 트레블, 유러피언컵 3연패를 모두 달성한 두 팀 중 하나이자, 2회의 트레블을 기록한 유이한 클럽이며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전대미문의 전승 우승을 달성한 클럽입니다. 거기에 11만여 명의 멤버십 회원들을 보유,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유럽 최대급의 규모를 자랑하며, 화려한 우승 경력, 수많은 레전드, 고고한 전통, 안정적인 유스 시스템까지 갖춘 바이에른 뮌헨은 명실공히 독일 최고 명문이자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첫 손꼽히는 메가 클럽이죠. 좀처럼 거액의 이적료를 지출하지 않고 합리적인 흑자 경영을 하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며, 타구단에서 자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공언할 정도입니다.
구단 이름인 FC 바이에른 뮌헨은 지역 이름 (바이에른 주 뮌헨)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보통 바이에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바이에른 뮌헨이 뮌헨이라는 도시를 대표한다기보다는 바이에른 주를 대표하는 팀으로써의 이미지가 더 강한데, 이는 독일은 1870년에 통일되기 이전까지 여러 개의 왕국과 공국으로 나눠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하기 때문이죠. TSV 1860 뮌헨이 40여 년 앞선 시기에 창단되기는 했지만, 바이에른 주를 대표하는 클럽은 바이에른 뮌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뮌헨 시와는 다르게 바이에른 주는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은 보수적인 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 연합과 '주의 클럽'과 '주의 정당'으로서의 연합을 맺고 역사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 시민들뿐만이 아니라 바이에른 주의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뮌헨을 지칭하는 애칭 'Die Roten'볼 수 있듯이 상징색은 붉은색이며, Rot und Weiß (붉은색 & 흰색)로 대표되는 이 팀의 고유한 컬러는 100년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2010년대에는 독일 클럽 최초의 트레블에 2013년 한 해 5관왕, 분데스리가 8연패 및 최단기간 우승 등 독일 내 온갖 레코드들을 갈아 치웠습니다. 이후 펩 과르디올라가 전성기의 스쿼드를 물려받았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실망스러운 성과를 내고 떠난 뒤, 결국 니코 코바치 후임인 한지 플릭 체제로 2019-20 시즌 또다시 트레블을 무려 챔스 전승 우승으로 이뤄내며 2010년대를 눈부신 팀의 세 번째 전성기로 장식하고 있으며,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했던 70년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2020 시즌 트레블에 이어 UEFA 슈퍼컵까지 7년 만에 다시 우승, 성공 신화를 이어가는 시즌으로 올 한 해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1군 스쿼드
2020년 현재 1군 스쿼드 (2020년 09월 30일 기준)
GK(골키퍼) : 마누엘 노이어(1), 스벤 울라이히(26), 알렉산더 뉘벨(35), 론토르벤 호프만(39),
DF(수비수) : 니클라스 쥘레(4), 뱅자맹 파바르(5), 요주아 키미히(6), 제롬 보아탱(17), 뤼카 에르난데스(21), 탕기 쿠아시(23), 데이비드 알라바(27),
MF(미드필더) : 하비 마르티네스(8), 미카엘 퀴장스(11), 레온 고레즈카(18), 알폰소 데이비스(19), 코랑탱 톨리소(24), 아드리아 파인(30), 크리스 리차즈(41), 지말 무시알라(42)
FW(공격수) : 세르주 그나브리(7),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9), 리로이 자네(10), 조슈아 지르크제이(14), 얀피테 아르프(15), 레온 디야쿠(16), 토마스 뮐러(25), 킹슬레 코만(29),
역사
FC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 체육 클럽 (MTV 1879)의 멤버들에 의해 창단되었습니다. MTV 1879의 선수들이 1900년 2월 27일 집회에서, 축구부가 독일 축구협회(DFB)에 가맹이 불가능함에 따라, 11명의 축구부 선수들이 MTV 1879에서 탈퇴하여 같은 날 오후에 축구 클럽 바이에른 뮌헨 (Fußball-Club Bayern München)을 창단하였습니다. 몇 달 후, 바이에른은 지역 라이벌을 상대로 모두 대승을 거두었고, 1900-01 시즌 남독일 챔피언쉽 준결승전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이어지는 후년에 바이에른은 몇 기의 지역 트로피를 획득하였고, 1910-11 시즌, 바이에른은 새로 출범한 바이에른 주의 1부 리그 "크라이슬리가" (Kreisliga) 에 속하였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첫 해에 이 리그 우승을 거두었지만,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는 무관에 그쳤고,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 전체의 축구 활동이 중지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에른은 1926년, 남독일 챔피언십이 출범하기 전까지 몇기의 지역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2년 후 이 성공을 반복하였습니다. 바이에른이 처음으로 획득한 우승 타이틀은 1932년의 리그 우승으로, 리하어트 "리틀 돔비" 콘 (Richard "Little Dombi" Kohn) 은 바이에른을 이끌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독일 챔피언쉽 결승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었죠.
나치즘이 정권을 가져가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성장은 정지되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유대인의 클럽"으로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반(半) 프로 클럽 바이에른은 나치즘으로 인해 완전한 아마추어 클럽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시기에 바이에른은 국내 타이틀을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지역 리그에서도 중위권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바이에른 뮌헨은 남부 오베르리가에 속하였으며, 1945년에서 1963년까지 13명의 감독을 해임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1955년, 바이에른은 2부 리그로 강등되었지만, 이듬해 1부 리그에 복귀하였고, DFB-포칼 결승에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1-0으로 꺾으며 첫 우승을 거두었죠. 바이에른은 이 시기에 재정난을 겪었고, 결국 1950년대에는 부도까지 나게 되었습니다.
1963년, 독일의 오베르리가는 단일 1부 리그인 푸스볼-분데스리가로 통합되었고, 출범 멤버로 5개의 오베르리가 팀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때 지역 라이벌인 TSV 1860 뮌헨이 오베르리가 우승을 거두었고 DFB는 같은 연고지의 2팀을 1부 리그에 넣는 것을 거부함에 따라,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의 출범 멤버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그로부터 2년 후에 처음으로 푸스볼-분데스리가에 등장하였고, 당시 프란츠 베켄바우어,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와 같은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였습니다.
유로피언 컵 3연패에 빛나는 바이에른 뮌헨의 황금기가 시작됩니다. FC 바이에른 뮌헨의 황금기는 게르트 뮐러, 프란츠 베켄바우어, 제프 마이어 등의 선수들이 이끌게 되는데, 게르트 뮐러는 독일과 뮌헨을 대표하는 레전드 스트라이커로 현재도 독일 및 뮌헨의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뮌헨 역대 최다 출장에 빛나는 역대 최고의 골키퍼 제프 마이어와 최고의 수비수였던 프란츠 베켄바우어도 설명이 부족하지 않은 선수들입니다.
승격 첫 해, 바이에른은 리그를 3위로 마감하고, DFB-포칼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바이에른은 이듬해 UEFA 컵 위너스컵 진출권을 획득하였고, 레인저스 FC와 드라마틱한 결승에서 만났다. 이 경기에서 프란츠 "불" 로트 (Franz "the Bull" Roth)는 연장전에서 1-0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1967년 브란코 제베츠 감독이 새로 사령탑에 올랐고, 그는 바이에른의 공격적인 플레이스타일을 더 다듬었고, 그 결과 푸스볼-분데스리가 첫 우승과 더불어 역사상 최초의 국내 더블을 이루었다.
1970년, 우도 라텍은 제베츠 감독의 뒤를 이어 새 사령탑에 오르게 되고,. 첫 시즌에 DFB-포칼 우승을 거둔 후, 라텍은 3번째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획득하였습니다. 1971-72 시즌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경기는 새 홈구장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에서의 FC 샬케 04와의 홈경기로, 바이에른은 샬케를 5-1로 대파함으로써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승점과 득점을 비롯하여 각종 신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바이에른은 이후 분데스리가 3연패에 성공하였고, 이중 3연패를 달성한 해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재경기 끝에 4-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어지는 2년간은 국내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지만, 리즈 유나이티드 AFC와의 유러피언 컵에서 로스와 뮐러의 막판 골로 유러피언 컵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였다. "우리는 경기의 흐름을 되찾아 행운의 2골을 득점하였으며, 그에 따라 우리는 행운의 승자가 되었다."라고 프란츠 베켄바워는 회고하였다. 이듬해 글래스고의 햄던 파크에서 벌어진 AS 생테티엔과의 결승에서도 로스의 결승골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달성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바이에른이 가장 마지막으로 얻은 국제대회 트로피는 인터콘티넨털컵으로, 홈앤 어웨이로 브라질의 크루제이루 EC를 꺾고 획득합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시기 동안 바이에른은 무관에 그치고 맙니다.
1980년은 바이에른에게는 피치 밖에 위기가 닥친 시기로, 보드진의 다수가 교체되었으며 재정난을 겪게 됩니다. 피치 위에서, 파울 브라이트너와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팀의 주축을 담당하여 FC 브라이트니게 (FC Breitnigge)라고 당시 명명되었으며, 1980년과 1981년에 리그 2연패를 하였죠. 1982년, DFB-포칼 우승과는 별개로, 브라이트너가 은퇴하고 우도 라텍이 바이에른 감독직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2년의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한 시즌이 뒤따랐습니다. 바이에른은 1984년에 포칼 우승을 거두었으며, 6 시즌 동안, 5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중 1986년에는 더블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80년대의 유럽 대항전에서는 바이에른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유러피언 컵에서 1982년과 1987년에 결승 진출에 성공하였으나, 각각 애스턴 빌라 FC와 FC 포르투에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987년, 유프 하인케스가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1988-89 시즌과 1989-90 시즌에 2연패를 거두었으나, 바이에른 뮌헨은 이후 하향세를 타게 됩니다. 1990-91 시즌 리그 준우승을 거둔 뒤, 1991-92 시즌에는 강등권과 5점 차로 잔류하는 부진을 겪게 되죠. 1993-94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프리미어리그의 노리치 시티 FC와의 UEFA 컵 2라운드에 패하여 탈락하기도 하였습니다. 1993-94 시즌 후반, 프란츠 베켄바워가 감독을 맡으며 다시 상승세를 탔고, 4년 만에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베켄바워는 구단의 회장이 되었다.
그의 후임 감독인 조반니 트라파토니와 오토 레하겔은 모두 바이에른의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무관으로 초라하게 1 시즌씩 마칩니다. 프란츠 베켄바워는 1995-96 시즌 막판에 급히 감독 대행을 맡았고, FC 지롱댕 드 보르도를 UEFA 컵 결승에서 꺾으며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1996-97 시즌,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다시 감독이 되었고,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죠. 그러나, 다음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승격팀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게 타이틀을 빼앗겼고, 트라파토니는 다시 해임되었습니다.
트라파토니가 경질된 이후, 바이에른에게 2년 연속으로 굴욕을 안겨주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오트마어 히츠펠트감독이 1998년에서 2004년까지 바이에른의 감독을 맡았습니다. 히츠펠트의 첫 시즌,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우승을 거두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랐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결승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고도 인저리 타임 막판에 2 실점을 하여 1-2로 석패하였죠. 1999-2000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클럽 역사상 세 번째 국내 더블을 이룩하였으며, 이듬해인 2001년에는 리그 최종 라운드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분데스리가 3연패를 하였습니다.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8강전에 만나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누 캄프의 비극에 대해 설욕하였고, 전 시즌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를 준결승에서 격파하고, 결승에서 지난 시즌 준우승 팀이었던 발렌시아 CF와 밀라노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격돌하게 됩니다.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였고, 25년 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죠. 2001-02 시즌은 인터콘티넨털컵으로 시즌을 시작하였지만, 빈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습니다. 2002-03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4번째 국내 더블을 기록하였고, 2위와의 기록적인 격차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히츠펠트는 2004년에 바이에른 뮌헨이 2 분데스리가의 알레마니아 아헨과의 DFB-포칼 경기에서 패한 것을 포함하여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며 해임되었다.
펠릭스 마가트는 바이에른의 후임 감독이 되어 역사적인 2년 연속 국내 더블을 기록하였습니다. 2005-06 시즌 시작 전,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 올림픽 경기장에서 알리안츠 아레나로 홈구장을 옮겼고, 새 구장 또한 TSV 1860 뮌헨과 공유하게 되었죠. 2006-07 시즌의 바이에른 성적은 리그 10위까지 떨어지는 등 끔찍하였다. 알레마니아 아헨과의 DFB-포칼 경기에서 또다시 발목이 잡히자,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겨울 휴식기 직후 해임되었다.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 오트 마어 히츠펠트가 2007년 1월에 바이에른으로 돌아왔지만, 2006-07 시즌에 4위로 마감한 바이에른 뮌헨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리그와 리그컵에서의 추가적인 패배로 바이에른은 이 시즌을 무관으로 마칩니다. 2007-08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다시 타이틀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스쿼드를 급변화시켰습니다. 이 기간에 8명의 선수가 영입되었고, 9명의 선수가 방출되거나 임대되었죠. 하밋 알튼톱이 FC 샬케 04로부터, 루카 토니가 ACF 피오렌티나로부터,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SV 베르더 브레멘으로부터, 그리고 프랑크 리베리가 기록적인 이적료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부터 이적하였습니다. 바이에른의 신입생들은 그 효과를 제대로 보았고, 바이에른은 2007-08 시즌에 DFB-포칼과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모두 되찾는 것은 물론이며, 매 라운드마다 선두를 달렸다.
2008년 1월 11일, 위르겐 클린스만은 도리카오 하츠의 후임 감독으로, 2008년 7월 1일에 사령탑에 올랐습니다. 2008-09 시즌 전반, 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6라운드까지 2 경기만을 승리하며 부진하게 시작하였지만, 다시 기량을 회복하였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바이에른은 올랭피크 리옹, ACF 피오렌티나,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더불어 F조에 속하여, 바이에른은 조 1위로 올랭피크 리옹과 16강에 올라, 스포르팅 CP와 16강에서 만나게 됩니다. 16강에서 바이에른은 원정에서 5-0, 홈에서 7-1 승리를 거두며, 녹아웃 최다 득점차 승리인 합계 12-1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FC 바르셀로나를 8강에서 만나 0-4로 대패하였고 결국 합계 1-5로 8강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4월 15일, FC 샬케 04와의 홈경기에서 패한 바이에른은 순위가 3위로 하락하였고, 클린스만은 해임됩니다. 클린스만의 해임은,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 완패, 이 시즌의 챔피언인 VfL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1-5 대패로 야기된 것이었죠. 전 바이에른 감독 유프 하인케스가 감독 대행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맡게 되고, 바이에른 뮌헨은 결국 시즌을 준우승으로 마감하였고, 2009-10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 직행하였습니다.
그 후, AZ 알크마르의 감독 루이스 판 할을 새 사령탑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바이에른은 2009-10 시즌을 부진하게 시작하였으나, 결국 토리노에서 있었던 유벤투스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9-10 A조 최종전에서 4-1 대승을 거두며 16강에 올라갔고,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게 됩니다. 16강에서 ACF 피오렌티나를, 이어지는 8강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그리고 4강에서 올림피크 리옹에게 4-0으로 승리하여 9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2010년 5월 8일, 바이에른 뮌헨은 2009-10 시즌 분데스리가를 헤르타 BSC 베를린을 3-1로 제압하며 획득하였습니다. 바이에른은 2010년 5월 15일에 DFB-포칼 결승에서 SV 베르더 브레멘을 4-0으로 꺾고 또다시 더블을 달성하였죠. 이제 남은 것은 트레블. 하지만 2010년 5월 22일, 뮌헨은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2009-10 결승전에서 조제 모리뉴가 이끄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0-2로 패하여 트레블이 무산됩니다.
2010-11 시즌 시즌, 바이에른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상대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원정골에서 밀려 탈락하였고, 그 시즌의 리그를 3위로 마감하게 됩니다.
2011-12 시즌, 바이에른은 트리플 러너업의 분루를 삼켰다. 국내 대회에서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결승전을 모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밀리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또한, 바이에른은 자신의 홈구장에서 열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진출하였으나, 첼시 FC와의 이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1-1 접전을 펼쳤으나, 승부차기에서 3-4로 석패하였습니다.
2012-13 시즌은 바이에른 뮌헨이 4차원적인 살인병기랑 맞먹을 정도로 완전히 일방적인 시즌이었습니다. 전통의 라이벌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제치고 리그 우승을 확정하여 우승하였고, 패배도 단 1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DFB-포칼 8강전에서도 도르트문트를 만나 1-0으로 승리하면서 조기 탈락시켰고, 결승전에서 VfB 슈투트가르트를 상대로 3-2로 승리하였습니다. 또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트레블을 달성하게 됩니다.
2013년 7월 1일, 펩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 뮌헨의 새 감독으로 임명됩니다. 2013년 7월 27일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열린 2013 DFL-슈퍼컵에서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2-4로 패하였고, 2013년 8월 30일에 열린 UEFA 슈퍼컵에서 첼시에 승리하면서 독일 클럽으로는 최초로 UEFA 슈퍼컵 우승을 달성하였습니다. 2013년 11월 9일 함부르크 SV가 30년 동안 보유하고 있던 36경기 연속 푸스발-분데스리가 무패 기록을 경신했으며 2013년 11월 27일에는 CSKA 모스크바와의 원정 경기에서 3-1 승리를 기록하면서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초로 10연승 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2013년 12월 21일 모로코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 2013에서 라자 카사블랑카를 2-0으로 누르고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였죠. 2014년 3월 26일, 헤르타 베를린과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함으로써 2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승점차를 25점으로 벌리며 27라운드 만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 지었는데, 이것은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단기간 우승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는 2년 만에 레알 마드리드와 다시 만났지만 1.2차전을 모두 패배하여 2회 연속 우승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5월 18일 열린 도르트문트 와의 DFB-포칼컵 결승에서 도르트문트를 2-0으로 꺾고 2회 연속 컵대회 정상에 올르며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리그 3연패에도 불구하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2013/14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2014/15 시즌에는 바르셀로나에게, 2015/16 시즌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하며 모두 4강에 그치게 되어, 리그 우승은 당연시되었던 뮌헨이었기에 펩 과르디올라의 뮌헨은 실패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펩 과르디올라는 3년 임기를 마친 후 재계약을 하지 않고 EPL의 맨체스터 시티로 팀을 옮기게 되고 그의 뒤를 이어 챔피언스리그 트로피가 목적이었던 뮌헨은 챔스의 전통의 대가 안첼로티를 감독으로 선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리 좋지 못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리그는 우승하였지만 다른 유럽 대항전은 모두 탈락하는 결과를 받게 됩니다. 이후 2017/18 시즌 시즌 도중 경질되고, 4번째 뮌헨의 감독직을 역임하는 유프 하인리케 감독이 임시 부임하게 됩니다. 불안정했던 팀을 추스르며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을 이룬 후, 2018/19 시즌 새로운 감독으로 니코 코바치가 부임합니다. 하지만 니코 코바치 역시 달라진 것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리그 더블은 달성하였지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하며 2019/20 시즌 중 경질되고 맙니다.
이후 한지 플리크 감독이 팀을 이끌게 되는데, 그의 아래에서 그동안 부진하였던 보아텡, 알리바, 뮐러 등의 선수들이 부활에 성공을 하였고, 레반도프스키와 티아고 등은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며 리그 우승과 포칼 우승. 리그 더블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단판승부로 진행되긴 하였지만, 뛰어난 경기력으로 전승 우승을 달성한 뮌헨은 통산 2번째 트레블을 달성하게 됩니다.
과거의 대업에 버금가는 기록을 만들며 새로운 기록들을 세워가고 있는 FC 바이에른 뮌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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