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짜릿한 묘미는 단연 경기를 매조짓는 끝내기일 것입니다. 투수에게는 마운드가 무너져 내리는 절망을, 타자에게는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는 환희를 선사하는 순간이죠. 그런데 이 만화 같은 끝내기를 하루도 아니고, '이틀 연속'으로 때려내는 타자가 존재한다면 믿어지십니까?
KBO 리그 44년 역사상 단 5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전대미문의 대기록. 전설적인 클러치 히터들조차 평생 한 번 해보기 힘든 이 위대한 기적을, 최근 키움 히어로즈의 김웅빈 선수가 다시 한번 증명해 냈습니다.

2026년 5월 19일과 20일, 고척스카이돔은 그야말로 거대한 도가니였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키움 히어로즈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던 데뷔 11년 차 내야수 김웅빈이었습니다. 2군에서 절치부심하다 콜업된 그는 5월 19일 SSG 랜더스와의 홈경기에서 6-6으로 맞선 9회말, 상대 마무리 조병현의 직구를 통타해 중앙 담장을 넘기는 생애 첫 끝내기 솔로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베이스를 돌고 들어와 중계 인터뷰에서 그간의 설움이 복받친 듯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수많은 야구팬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5월 20일, 스코어 5-5로 맞선 9회말 2사 1, 2루 찬스. 약속이라도 한 듯 전날의 패전 투수 조병현과 김웅빈이 다시 마주 섰습니다. 그리고 김웅빈의 배트가 다시 한번 날카롭게 돌았고, 공은 외야로 뻗어 나가 경기를 끝내는 결승 적시타가 되었습니다.
KBO 역사상 최초로 '동일 투수를 상대로 이틀 연속 끝내기'를 기록한 순간이자, 리그 역대 5번째(공식 타이틀 기준) 2경기 연속 끝내기 안타의 대기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매번 끝내기를 칠 수 있다면 기꺼이 '국민 울보'가 되겠다던 그의 활약은 이 대기록의 역사적 페이지를 다시 들춰보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틀 연속 끝내기'라는 바늘구멍을 뚫어낸 앞선 선배들의 스토리는 어땠을까요? 김웅빈 이전에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던 4명의 주인공을 달성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1. 현대 이숭용 (2003 시즌 / 8월 28일 ~ 29일) / 상대 팀: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현대 왕조의 든든한 캡틴이었던 이숭용은 KBO 역사상 가장 강력한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 최초의 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8월 28일 수원 LG전에서 연장 10회말 짜릿한 끝내기 안타를 날리더니, 바로 다음 날인 29일 두산전에서도 연장 10회말에 다시 한번 경기를 끝내는 적시타를 터뜨렸습니다. 이틀 연속 연장 사투를 끝낸 캡틴의 묵직한 존재감은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 DNA를 그대로 증명한 명장면이었습니다.
2. 롯데 문규현 (2016 시즌 / 6월 28일 ~ 29일) / 상대 팀: 삼성 라이온즈
사직의 살림꾼 문규현은 야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이틀을 2016년에 보냈습니다. 6월 28일 사직 삼성전에서 연장 10회말 극적인 끝내기 3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사직 구장을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29일, 이번엔 4-4로 맞선 9회말 무사 만루에서 다시 한번 좌전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습니다. 평소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하게 팀을 지키던 문규현이 이틀 연속 주인공이 되자 롯데 팬들은 그에게 '문대호(문규현+이대호)'라는 최고의 별명을 선사했습니다.
3. 삼성 박한이 (2018 시즌 / 7월 21일 ~ 22일) / 상대 팀: 한화 이글스
'꾸준함의 대명사'이자 삼성의 레전드 스나이퍼 박한이 역시 이 미친 역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구에서 펼쳐진 한화와의 주말 시리즈, 7월 21일 9회말 좌전 끝내기 안타로 시동을 건 박한이는 다음 날인 22일에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22일 경기에서는 당시 리그 최강의 마무리로 군림하던 정우람을 상대로 9회말 역전 끝내기 2루타를 폭발시키며 사자 군단의 베테랑 품격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입증해 냈습니다.
4. 키움 주효상 (2020 시즌 / 6월 18일 ~ 19일) / 상대 팀: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
김웅빈의 직속 선배이자 넥센-키움 히어로즈의 '끝내기 요정' 주효상의 2020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주효상의 기록이 더 놀라운 것은 '각기 다른 팀'을 상대로 연이틀 경기를 끝냈다는 점입니다. 6월 18일 고척 롯데전에서 연장 10회말 끝내기 2루타를 쳤던 그는, 하루 뒤인 19일 고척 SK(현 SSG)전에서 9회말 주자 만루 상황에 대타로 나와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습니다. 포수라는 체력적 부담 속에서도 대타로 나와 이틀 연속 경기를 끝낸 주효상의 집중력은 영웅네 안방마님의 잠재력을 보여준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2003년 이숭용을 시작으로 문규현, 박한이, 주효상, 그리고 2026년의 김웅빈까지. 이틀 연속 끝내기 대기록의 면면을 살펴보면 홈런왕이나 타격왕 같은 슈퍼스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오히려 묵묵하게 팀의 뒤를 받치던 살림꾼(문규현), 기회를 잡기 위해 눈물 흘리던 백업 포수(주효상), 그리고 유망주 틀을 깨기 위해 치열하게 버텨온 미완의 대기(김웅빈)처럼 "내게 온 한 타석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라며 간절하게 배트를 휘두른 선수들이 이 진기록을 완성했습니다.
단 한 번의 스윙으로 이틀 연속 신이 되었던 다섯 명의 영웅들. 이들이 뿜어낸 짜릿한 클러치 능력은 KBO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가장 아름다운 하이라이트 필름입니다.
'Herr.Kwak_야구도사 > KBO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이버메트릭스로 보는 역대 지명타자 단일 시즌 타격 생산성(wRC+) TOP 10 (0) | 2026.05.27 |
|---|---|
|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 최근 5년간 KBO 리그 ‘시즌 1호 퇴출’ 잔혹사 (0) | 2026.05.27 |
| 세이버메트릭스로 보는 역대 우익수 단일 시즌 타격 생산성(wRC+) TOP 10 (1) | 2026.05.22 |
| 세이버메트릭스로 보는 역대 좌익수 단일 시즌 타격 생산성(wRC+) TOP 10 (0) | 2026.05.22 |
| 세이버메트릭스로 보는 역대 유격수 단일 시즌 우르크 TOP 10 (타격 생산성 / wRC+ TOP 10) (0) | 2026.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