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 정식 명칭 : Verein für Bewegungsspiele Stuttgart 1893 e. V.
- 애칭 : Die Roten, Die Schwaben
- 창단일 : 1893년 09월 09일
- 연고지 :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현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Baden-Württemberg)
- 홈구장 :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Mercedes-Benz Arena)
- 회장 : 클라우스 포크트(Klaus Vogt)
- 이사장 : 토마스 히츨슈페르거 (Thomas Hitzlsperger)
- 단장 : 스벤 미슬린타트 (Sven Mislintat)
- 감독 : 펠레그리노 마타라조 (Pellegrino Matarazzo)
- 주장 : 곤살로 카스트로 (Gonzalo Castro)
- 2020/2021 유니폼
- 역대 앰블럼
엠블럼은 구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지방 문장(coat of arms)에서 따온 것으로, 슈투트가르트에 본사를 둔 포르셰도 같은 문양을 쓰고 있습니다.
- 우승 기록
→ 독일 챔피언십 2회
→ 가우리가 뷔르템베르크(1부) 4회
→ 분데스리가(1부) 3회
→ 2. 분데스리가(2부) 2회
→ DFB 포칼 3회
→ DFL 슈퍼컵 1회
→ UEFA 인터토토컵 3회 (최다우승)
페어라인 퓌어 베베궁스슈필레 슈투트가르트 1893 e. V.(Verein für Bewegungsspiele Stuttgart 1893 e. V.) 혹은 줄여서 VfB 슈투트가르트(VfB Stuttgart)로 알려진 이 클럽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입니다. 이 클럽은 축구 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 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축구 클럽으로 가장 유명하며, 3번을 제외한 모든 분데스리가 시즌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팀은 5번의 리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최근에 들어 우승한 시즌은 2006-07시즌입니다. 이 클럽은 리그 외에도 DFB-포칼 우승을 3회 경험하였습니다. 또한 실력을 갖춘 VfB 슈투트가르트 II를 현재 3. 리가에 보유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U-19 청소년 팀은 10번을 우승한 U-19 리그 최다 타이틀 기록을 보유한 팀이며, U-17팀 또한 6번의 우승을 경험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VfB 슈투트가르트는 멤버쉽 제도 클럽으로, 2011년 9월 기준, 43,636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어,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최대 스포츠 클럽이자, 독일에서 5번째로 큰 클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성공적인 프로, 아마추어, 유소년 축구팀, 그리고 클럽의 체조부는 다수의 타이틀과 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1군 스쿼드
- 2020년 현재 1군 스쿼드 (2020년 09월 30일 기준)
GK(골키퍼) : 그레고어 코벨(1), 옌스 그랄(13), 파비안 브레틀로(33)
DF(수비수) : 발데마르 안톤(2), 엔도 와타루(3), 마르크올리버 켐프(4), 콘스탄티노스 마브로파노스(5), 파스칼 슈텐첼(15), 막시메 아부자(17), 보르나 소사(24), 안토니스 아이도니스(26), 홀거 바트슈투버(28), 마르친 카민스키(35), 루카 마크(36)
MF(미드필더) : 클린턴 몰라(6), 탕기 쿨리발리(7), 곤살로 카스트로(8), 다니엘 디다비(10), 에리크 토미(11), 아타칸 카라초어(16), 하마디 알 가디위(18), 필리프 푀르스터(20), 필리프 클레멘트(21), 니콜라스 곤살레스(22), 오렐 망갈라(23), 릴리안 에글로프(25), 로베르토 마시모(30), 마테오 클리모비츠(31)
FW(공격수) : 사샤 칼라이지치(9), 사일러스 와망기투카(14), 다르코 추를리노프(19), 모모 시세(29)
버라인 퓌어 베베궁스슈필레 슈투트가르트 (Verein für Bewegungsspiele Stuttgart)는 1912년 4월 2일, 기존에 존재하던 슈투트가르터 FV (Stuttgarter FV)와 크로넨-클럽 칸슈타트 (Kronen-Club Cannstatt)가 칸슈타트의 콩코르디아 호텔 회의를 통해 합쳐지며 창단되었습니다. 이 두클럽은 중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영국인들로부터 럭비와 축구 같은 새 스포츠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슈투트가르터 푸스볼버라인 (Stuttgarter Fußballverein)은 1983년 9월 9일, 춤 베허에 의해 창단되었습니다. FV는 원래 럭비 클럽으로, 스퇴카흐-아이스반을 연고로 하다가, 1894년 칸슈타터 바센으로 이전하였습니다. 럭비 클럽은 1908년에 축구부를 창단하였는데, 이 팀은 주로 지역 학교로부터 선수들을 불러모았고, 카를 카우프만 선생의 지도 하에, 빠른 시간 내에 첫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09년, FV는 남독일 축구 협회 (Süddeutschen Fußballverband)에 가맹되어, 2부 리그인 B-클라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2번째 시즌에, 나중에 통합되어 VfB 슈투트가르트가 되는 크로넨-클럽 칸슈타트와의 지역 결승에서 승리하였지만, FV 추펜하우젠과의 국가 챔피언쉽에서 패하였습니다. 이 경기는 그들의 승격이 달려 있었으며, 그들은 결국 1912년에 쉬드크라이스리가 (Südkreis-Liga)로 승격되었습니다.
1933년, VfB는 홈구장을 네카어슈타디온으로 옮겼고, 같은 해 독일 축구는 독일 제3 제국에 의해 16개의 가울리가 (Gauligen)라고 불리는 1부리그로 개편되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가울리가 뷔르템베르크에 속하였고 성공적인 시대를 보내게 됩니다. 슈투트가르트는 1935년, 1937년, 1938년, 1940년, 그리고 1943년에 우승을 경험하였습니다. 1944-45 시즌, 가울리가 시스템이 붕괴되었고,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와의 라이벌 관계가 이 시기에 생겨났습니다. VfB의 가울리가 우승 타이틀은 국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하였으나 1935년 그들은 4-6으로 FC 샬케 04에 패한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1937년 국가 플레이오프에서 3위를 획득한 이후, 슈투트가르트는 그 이후로 예선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전후, VfB는 1부 리그인 오베르리가 쉬드 (Oberliga Süd)에 속하여 1946년, 1952년, 그리고 1954년에 우승을 하였습니다. 이 팀은 독일 챔피언쉽에 진출하여 1950년과 1952년에 우승을 경험하였고, 1953년에는 준우승을 하였습니다. 1950년대, 클럽은 DFB-포칼을 두 번 (1954년, 1958년) 경험하였습니다. VfB는 8년간 4개의 타이틀을 교통 사고로 팔을 잃은 로베르트 슐린츠의 지도 하에 이루어냈습니다.
1958년 FIFA 월드컵과 1962년 FIFA 월드컵의 실망적인 결과에 따라, DFB는 1963년에 단일 1부 프로축구 리그인 푸스볼-분데스리가를 출범시켰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1950년대에 획득한 우수한 성적을 기반으로 분데스리가의 1963년 16개 원년 클럽 중에 하나로 포함되었습니다. 이 클럽은 당시 슈바브 사회단체의 아마추어 조직으로, 돈을 쓰는데 인색하였고, 일부 선수는 투잡으로 생활하였습니다. 때문에 10여 년간 클럽에 균형을 잡은 뒤, 클럽은 대체로 중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이 당시 유명 슈퍼스타로는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길베르 그레스가 있습니다.
VfB 슈투트가르트는 1970년대 중반, 스폰서십을 비롯한 새로운 트렌드에서 뒤처지며, 재정난이 닥쳤습니다. 지출을 통하여 새로운 프로 시대에 대응하는 정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죠. 1974-75 시즌 말, 2 분데스리가 강등 위기까지 닥쳐왔습니다. 지역의 정치인 게르하르트 마여-포어펠더는 구단의 새 회장으로 선출되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는 바람에 VfB는 16위로 마감하고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되었습니다. 첫 번째 2 분데스리가 시즌은, 구단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되었고, VfB는 심지어 지역 라이벌 SSV 로이틀링겐과의 홈경기에, 1200명의 관중 앞에서 패하였으며, 시즌을 11위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새 감독, 위어겐 선더만과 신예 카를하인츠 푀어스터와 한지 뮐러, 골잡이 오트마어 히츠펠트 등의 VfB 선수들은 1976-77 시즌에 100골을 득점하였고, 2 시즌만에 1 분데스리가로 복귀하였습니다.
이 젊은 팀은 공격적인 플레이와 고득점 경기는 인기를 불렀지만, 경험 부족으로 문제에 직면하고 맙니다. 1977-78 시즌 종료 후, VfB는 시즌을 4위에 랭크되었고, 1990년대까지 53,000명 이상의 관중 기록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1980년에 또 다시 UEFA 컵에 진출하여 준결승까지 진출하였고, 1980년에도 준결승에 진출하였으며, 1980년대에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획득하였습니다. 바로 1984년으로 헬무트 벤타우스 감독하에 슈투트가르트는 우승을 경험하게 됩니다.
1991-92 시즌, 클럽은 다시 분데스리가 정상에 다시 올랐고, 이는 가장 치열한 타이틀 경쟁의 시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시즌 종료 후 승점이 동률이었지만, 골득실 차에 의해 우승을 획득하였던 것이죠. 국가대항전에서, 그들은 UEFA 컵 2라운드에서 스페인 라리가의 CA 오사수나에게 2-3으로 패하였습니다. 리그 챔피언으로써, 클럽은 UEFA 챔피언스리그 1992-93에 진출하였지만, 이 또한 리즈 유나이티드 FC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패하여 탈락하고 맙니다. VfB는 이후 1997년 요아힘 뢰프의 지도 하에 DFB-포칼을 우승할 때까지 어느 유럽 대항전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침체기에 빠집니다. 1998년, 슈투트가르트는 UEFA 컵 위너스컵에 참여하였고 스톡홀름에서 열린 결승까지 진출하였지만, 결국 아쉽게 결승에서 첼시 FC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매직 트라이앵글 3인방 중 한 선수인 크라시미르 발카로프만이 이후에 잔류하였고, 나머지 지오바니 에우베르와 프레디 보비치는 클럽을 떠나고 말죠. 뢰프 감독 또한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고, 그의 공백은 빈프리트 섀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1 시즌만에 경질되고 말았죠. 슈투트가르트의 성적은 발카로프와 같은 베테랑을 대체하기 위해 무분별한 지출을 하였고, 그에 따라 팀의 성적은 중위권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많은 빚이 쌓이고, 실망스러운 결과가 겹치며, 게르하르트 마여-포어펠더회장은 2000년에 사임하여, 독일 축구 협회, UEFA, FIFA의 보드진이 되었습니다. 새 회장 만프레트 하스는 예산과 드물게 출전하는 선수들의 연봉을 삭감하여야 했죠. 1976년, 마여-포어펠더가 회장을 맡은 이후, 팀은 유스 출신 선수들로 리빌딩을 하여야 했습니다. 랄프 랑니크 감독은 UEFA 인터토토컵 우승 주역을 중심으로 리빌딩에 착수하였으나, UEFA 컵에서의 실망스러운 성적과 2000-01 시즌 강등을 겨우 모면한 15위는 랑니크의 자리를 펠릭스 마가트로 교체되었습니다. 안드레아스 힌켈, 케빈 쿠라니, 티모 힐데브란트, 알략산드르 흘렙을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감행한 슈투트가르트는 "마가트 유치원"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2002-03 시즌, 슈투트가르트는 리그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하지만 2006-07 시즌 1. FC 뉘른베르크전 0-3 대패를 포함하여 초반 연패와 맹비난으로 1년을 시작하지만, 이에도 불구하고 아어민 페 감독은 멕시코의 파벨 파르도와 리카르도 오소리오, 브라질의 안토니우 다 시우바, 지역의 신예들인, 마리오 고메스, 제르다어 타스치, 자미 케디라와 같은 선수들을 동원하여 2006년 11월 12일, 본격적으로 타이틀 경쟁에 뛰어들었고, 15년 만에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르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VfB는 DFB-포칼 결승에 진출하여, 10년 만의 포칼 정상 탈환과 클럽 역사상 최초의 더블 기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뉘른베르크에게 결승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더블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2010-2011 시즌부터 중하위권의 성적으로 12위, 12위, 15위, 14위를 유지합니다. 2011-12 시즌에는 6위로 유로파리그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는데, 후반기에 원정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는 선전으로 분데스리가 돌풍의 핵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2015-16 시즌 개막 5연패로 최악의 시작을 보내며 13경기에서는 31실점으로 최다 실점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결국 감독은 사퇴를 당하고 크람니가 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이 됩니다. 이와 함께 후반기를 시작하며 선전을 하게 됩니다. 중위권인 10위까지 올라가게 되지만 시즌 막바지 6연패를 당하며 결국 17위를 기록하며 강등되고 맙니다. 하네스 볼프 감독을 새로이 선임한 슈투트가르트는 1 시즌만에 2.분데스리가 우승을 거머쥐며 1.분데스리가로 복귀하게 되는데, 복귀 첫해 시즌 중반까지 승점 20점으로 15위를 기록한 클럽은 감독 교체 후 7경기무패를 기록하며 선전, 최종 순위 리그 7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2018-19시즌 1승 6패로 최하위로 처지며 리그를 시작하게 된 슈투트가르트는 결국 최종순위 16위를 기록하고 우니온 베를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2:2 무승부, 0:0 무승부를 기록하여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2. 분데스리가로 또 다시 강등되고 맙니다.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게 되죠. 하지만 지난 2019-20 시즌 2.분데스리가 우승을 거머쥐며, 또 다시 1시즌만에 1. 분데스리가로 복귀하였습니다.
최근 과거의 영예보다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는 1부 리그에서는 중하위권, 혹은 하위권으로 전락하고만 슈투트가르트. 하지만 이번 시즌 초반 행보는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하노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발데마르 안톤 선수를 영입하는 등 전력 보강을 알차게 한 덕분인지, 1라운드에서는 패배를 당했지만 이후 2승 2무를 기록하며 현재 5라운드까지 진행된 가운데 2승 2무 1패로 5~6위인 묀헨글라드바흐와 프랑크푸르트에 골득실에서 앞선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소위 말하는 BVB나 라이프치히, 그리고 FC 바이에른 뮌헨 등 강팀과의 경기가 없어 섣부른 판단은 하지 이르지만 현재까지는 훌륭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강등과 승격, 그리고 잔류의 3단계 주기로 살펴보면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이룰 시즌인데요, (15-16 시즌 강등, 16-17 시즌 승격, 17-18 시즌 7위, 18-19 시즌 강등, 19-20 시즌 승격, 20-21 시즌?) 과연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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