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호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수년간 축구계를 양분했던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선수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음홀대전.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 선수와 노르웨이의 엘링 홀란드 선수가 이을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을 했지만, 지금은 스페인의 로드리 선수를 위한 시간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에서 활약하는 스페인 국적의 로드리 선수가 29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열린 ‘2024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남자선수 부문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축구전문지 프랑스풋볼이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발롱도르는 올해로 68회째를 맞이합니다.
지난해 8월 1일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돋보였던 최종 후보 3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전 세계 100명의 기자단 투표 결과, 로드리 선수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선수(브라질), 주드 벨링엄 선수(잉글랜드)를 제치고 ‘최고의 별’로 등극하였습니다.
로드리 선수는 지난달 23일 아스널과 2024~25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돼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으나, 이날 목발을 짚고 시상식에 참석해 발롱도르를 수상하였습니다. 스페인 선수로는 1957년과 1959년 2회 수상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선수와 1960년 수상한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선수에 이어 3번째입니다. 약 60년 만에 스페인에 발롱도르가 돌아왔습니다.
로드리 선수의 지난 2023~24 시즌은 화려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돋보이는 포지션은 아니지만, 늘 헌신적 플레이와 꾸준한 득점력으로 맨체스터시티와 자국 대표팀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신뢰 속에 맨체스터시티에선 EPL 4연패를 달성했고, 202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24)에선 ‘무적함대’의 중원을 지키며 정상에 올라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였습니다.
이어서 발롱도르 여자선수 부문은 스페인 국적의 바르셀로나 소속 아이타나 본마티 선수가 2년 연속 수상하였습니다. 21세 이하 영건이 대상인 ‘코파 트로피’는 스페인의 17세 신성 바르셀로나 소속의 라민 야말 선수에게 돌아갔습니다. 남녀 감독으로는 레알 마드리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미국여자대표팀 엠마 하예스 감독이 선정되었습니다.
축하와 환호가 이어져야 할 경사스러운 시상식. 그러나 실망스러운 모습도 있었는데요, 비니시우스 선수의 수상 불발 정보를 입수한 레알 마드리드가 행사에 보이콧을 한 것입니다. 지난 시즌 39 경기에서 24 득점을 기록하고, 2023~24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비니시우스 선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필요하면 10배 더 뛰겠다”며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로드리 선수의 이번 발롱도르 수상에 대해 "로드리의 발롱도르 수상은 공격수만 세계 축구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대가 종식됐다는 신호다."라고 프랑스 매체 레퀴프는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비니시우스 선수가 지난 6월 레알 마드리드의 통산 15번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이끌 때까지만 해도 수상에 가장 근접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 로드리가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에서 스페인의 우승과 함께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면서 투표단의 생각도 바뀌었는데요. 로드리 선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소속팀과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63경기에 출전해 단 한 번만 패배를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클럽과 대표팀의 경기력은 로드리 선수의 활약에 크게 좌지우지 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100차례 키패스와 패스 성공률 93%를 기록했으며 결정적 찬스도 11번이나 만들었습니다.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에 보다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데도 공격 포인트도 12골 14도움으로 꽤 많이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로드리 선수의 수상은 하나의 혁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바로 공격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발롱도르 기존 판도를 뒤바꾼 것인데요. 2006년 중앙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가 이탈리아의 2006 독일 월드컵 우승을 전리품으로 앞세워 발롱도르를 차지한 뒤 발롱도르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함 공격수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칸나바로 선수의 수상 이후 리오넬 메시 선수가 8차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가 5차례 트로피를 들었고 카카 선수, 카림 벤제마 선수, 루카 모드리치 선수가 한 번씩 수상을 하였습니다.
이 기간 수비 포지션에서 수상에 근접한 때는 2019년으로, 센터백 버질 반 다이크 선수가 겨우 7점 차이로 메시 선수에 밀려 2위에 자리하여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최근 발롱도르 경쟁에서는 공격 포인트 개수와 우승 횟수가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공격수보다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는 수비수 입장에서는 더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드디어 깨졌습니다. 한 시즌 동안 완벽한 경기력을 펼쳐 대단한 성과를 올린 로드리가 발롱도르를 받는 것에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었습니다.
로드리 선수의 소속팀 동료인 일카이 귄도안 선수는 "로드리의 수상은 당연한 결과다. 그는 더 이상 과소평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수비 포지션의 선수가 발롱도르를 받았던 것이 더없이 기쁘다. 이 상은 공격수만 받는 게 아니다. 로드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형 미드필더이며, 이 포지션에서 그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로드리 선수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레퀴프도 "이번 발롱도르 시상식을 통해 축구 경기에서 일어나는 마법의 영역이 공격수들을 넘어 더 크게 확장됐다는 걸 인지해줬다"며 로드리의 수상에 큰 의의를 두었습니다.
트로피를 받은 로드리 선수는 그동안 그늘에 가려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선수들의 승리라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발롱도르를 받을 자격이 있었던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이케르 카시야스, 세르히오 부스케츠, 그리고 수많은 선수를 위한 승리"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이어 "그림자 속에 있던 미드필더들이 서서히 주목받게 됐고, 오늘 가장 화려하게 조명받았다"고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