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또다시 감독 경질의 흑역사를 되풀이하였습니다. 맨유는 지난 10월 28일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하여 에릭 텐 하흐 감독과의 결별을 발표했습니다. 이유는 성적 부진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은 "텐 하흐 감독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2022년 4월 사령탑에 선임돼 두 개의 국내대회인 2023년 카라바오컵과 2024년 FA컵에서 우승을 이끌었다"라고 발자취를 조명하며 "우리는 텐 하흐와 함께한 모든 시간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행운이 따르기를 바란다"라고 작별인사를 전했습니다. 새로운 사령탑이 선임될 때까지 당분간은 맨유의 전설인 루드 반 니스텔루이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 예정입니다.
이번 텐 하흐 감독의 경질은 예상치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고된 이별이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 은퇴 후 수많은 감독들이 맨유를 거쳤으나 모두들 팀 재건에 실패했고 이는 텐 하흐 감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텐 하흐 감독의 경우 네덜란드 아약스에서의 성공 신화를 믿고 팀의 미래를 맡겼으나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며 팬들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부임 첫 해 리그 3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던 텐 하흐 감독은 지난해 8위, 그리고 올 시즌에는 14위까지 추락하며 보드진이 칼을 빼드는 결과를 스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제 문제는 후속 조치입니다. 맨유는 팀 재건을 위해 텐 하흐 감독에게 천문학적인 이적 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이에 텐 하흐 감독이 2년 6개월간 선수 영입에 사용한 돈은 무려 6억 1600만 파운드(약 1조 1076억 원)에 달합니다.
텐 하흐 감독 부임 이후 맨유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안토니 1명에게만 8540만 파운드(약 1536억원)가 투입됐고, 라스무스 호일룬(7200만 파운드), 카세미루(7000만 파운드), 메이슨 마운트(6000만 파운드), 레니 요로(5890만 파운드), 리산드로 마르티네스(5670만 파운드) 등 굵직한 이적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맨유 이적 후 성공보다 실패로 귀결됐고 이는 곧 팀 성적 부진이라는 부메랑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맨유 감독의 부진은 한때 세계 최고의 명문구단을 자부하던 맨유의 추락은 축구팬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맨유는 창단 이래 1부리그 역대 최다인 20회의 우승을 기록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회, FA컵에서도 13회 정상에 오르며 화려한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 출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 중심에 있었고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27년간이나 장기집권하며 13회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2회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1999년에는 잉글랜드 구단 최초의 트레블(3관왕)을 달성하며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한국축구의 전설인 박지성 역시 2000년대 중반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던 맨유의 일원으로 합류하며 주축 선수로 활약하기도 하였죠.
하지만 맨유는 2012-13 시즌 퍼거슨 감독이 은퇴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마지막 은퇴 시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맨유는, 이후 11년 간 무려 5명의 정식 감독과 3명의 감독대행이 팀을 거쳐가는 동안 더 이상 리그 우승을 추가하지 못하며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 이후 맨유를 거쳐간 5명의 정식 감독인 데이비드 모예스(스코틀랜드)-루이 판 할(네덜란드)-주제 무리뉴(포르투갈)-올레 군나르 솔샤르(노르웨이)-에릭 텐 하흐(네덜란드) 감독은 모두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습니다. 재임기간 3년 이상을 넘긴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처참한 기록을 모두 만들었습니다.
맨유의 전설인 퍼거슨 감독은 맨유에서만 무려 1500경기를 지휘하며 896승 338무267패 승률 59.7%를 기록했습니다. 우승 횟수만 38회에 이르고 있죠. 반면 최근 11년 간 나머지 감독들의 우승 횟수를 모두 합쳐도 7회(커뮤니티 실드 2회, FA컵 2회, 리그컵 2회, 유로파리그 1회)에 불과하며, 가장 비중이 높은 리그와 UCL 우승은 전무합니다.
퍼거슨 시대 이후 그나마 두번째로 높은 승률과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감독은 무리뉴 감독으로 144전 84승 32무 28패, 승률 58.3%, 우승 3회(유로파리그, 리그컵, 커뮤니티실드)를 기록했습니다. 그다음이 텐 하흐 감독으로 128경기 72승 20무 36패, 승률은 55.1%, 우승 2회(리그컵, FA컵)를 기록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후대의 펩 과르디올라(맨시티)나 위르겐 클롭(전 리버풀)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전술적 철학을 갖춘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뛰어난 선수단 장악력과 시스템 구축 능력에 장점이 있는 전형적인 '매니저형 감독'이었고, 강력한 리더십을 갖췄지만 변화하는 축구계의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유연성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직 퍼거슨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던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전술, 선수 관리, 발굴과 육성, 이적 정책등 여러 면에서 고른 능력치를 갖춘 육각형 감독이었지만, 현대축구에서는 더 이상 감독 한 명이 구단의 모든 시스템에 관여하는 구조가 아니게 바뀌었습니다. 오랫동안 퍼거슨 감독의 장기집권에 익숙해져 있던 맨유는, 대체불가했던 퍼거슨 감독이 갑자기 사라지자 방향성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비전도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예스 감독은 에버튼에서 나름의 성과를 남겼으나 우승권 빅클럽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는 전형적인 중위권팀 감독이었습니다. 판 할 감독과 무리뉴 감독은 맨유 이전 여러 빅클럽에서 우승을 경험해본 거물급 명장이었지만, 맨유를 맡을 무렵에는 리더십과 전술 철학에서 전성기를 지나 서서히 시대에 뒤처지고 있던 감독들로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솔샤르 감독은 맨유의 레전드이자 퍼거슨의 제자라는 상징성이 있었지만 감독으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이처럼 경력도 스타일도 제각각인 감독 선임은 구단의 방향성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 아니라, 감독이 바뀔 때마다 무분별한 선수단 개편으로 인한 이적료 상승이라는 부작용까지 초래하였습니다.
가장 최근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맡았던 텐 하흐 감독은 맨유을 맡기 전 AFC 아약스(네덜란드)에서 리그 우승 3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4강 진출 등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2022년 4월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빅리그 무대는 잉글랜드가 첫 도전이었습니다.
텐 하흐 감독은 첫 시즌 리그 3위에 오르고 리그컵(카라바오컵) 우승, FA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순항하는 듯했지만, 2번째 시즌부터 극심한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창설 이래 가장 낮은 순위인 8위로 추락했고, UCL에선 무난한 조 편성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꼴찌를 기록하며 유로파리그(UEL)도 나가지 못한 채 그대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퍼거슨 시대 이후 최초로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명분으로 인하여 경질은 피했지만,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텐 하흐 감독과의 동행을 연장한 것은 맨유에게 최악의 선택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맨유는 올시즌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동안 3승 2무 4패를 기록하며 승점 11점으로 리그 14위로 떨어져 있습니다. 지난 27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리그 경기에서도 1-2로 패하자 구단은 결국 뒤늦게 경질을 통보하였습니다.
맨유는 텐 하흐와 2026년 6월까지 연장 계약을 체결했기에 이번 중도 경질 위약금으로만 약 1750만 파운드(약 310억 원)를 지급해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임으로는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리스본을 이끌고 있는 젊은 명장 후벵 아모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전설 사비 에르난데스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중, 후임 사령탑으로는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 CP를 지휘하는 39세의 젊은 감독 루벤 아모림이 유력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요, 아모림 감독은 지난 2020-2021시즌 스포르팅의 정규 시즌 우승으로 이끌며 '프리메이라리가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고 지난 시즌 다시 한번 팀을 정상에 올려놓아 유럽을 대표하는 젊은 명장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맨유의 차기 사령탑은 팀 성적을 끌어올리며 기존 팀에 녹아들지 못한 선수들을 대거 정리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와 마주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판매해 최대한의 이득을 챙기고, 자기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몇 명이나 끌어들일지 골치 아픈 맨유 사령탑의 미래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과연 퍼거슨 시대 이후 '감독들의 무덤'으로 전락한 맨유에서 11년 째 이어지고 있는 감독 잔혹사를 끊을만한 명장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 가장 유력한 감독 후보인 아모림 감독은 이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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