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r.Kwak_일상/독일에서 살아가기

[우당탕탕_독일생존기]#01. 모든 시작은 난관이다.

o헤어곽o 2020. 4. 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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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04일.

누군가에겐 흔하디 흔한 하루였을 그 날은 나에겐 큰 의미로 남아있는 그런 날이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이고 틀에 박혀있던 나의 삶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무모했으며, 당돌했으며, 거침이 없었다.

물론,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어떠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선택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처럼 내 선택으로 인해 내 삶은 어찌 보면 180도 바뀌었다.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총각에서 유부남으로, 직장인에서 백수로 바뀌었으며

갑작스레(남들이 보기에는) 선택한 독일행에 많은 우려 섞인 이야기를 들었으며, 물론 그 이야기의 주체에는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독일로 떠나는 날 새벽.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짐을 챙기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인천 국제공항으로 나왔음에도 시작부터 우당탕탕이었다. 장난처럼 SNS에 업로드할 때 해시태그로 달고 있는 (우당탕탕 독일생존기)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말 그대로 우당탕탕이었다.

 

아침 10시경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앞서 이른 아침 7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다.

여유롭게 체크인 창구 오픈을 기다리며 일찌감치 줄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가지 짐들을 박스에 따로 포장을 해야 했으며, 몇몇 짐들은 무게 초과에 걸려 짐을 다시 배분하는 등 이런 사소한 일들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수하물을 보내고 난 후, 서둘러 준비를 한 덕에 시간이 꽤나 여유롭게 남았다.

한동안 먹지 못한 한국음식을 마지막까지 한 끼라도 더 먹여서 보내고 싶은 부모 마음과, 한 끼라도 더 먹고 싶은 떠나는 자의 마음이 일치하여 식당으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

시계를 보며 여유롭게 밥을 먹던 중, 갑자기 생각이 났다. 인천공항은 게이트를 통화하면 바로 코 앞에 비행기가 있는 게 아니라, 지하철(?)을 타고 또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부랴부랴 게이트를 통과하느라, 이른 새벽부터 함께 있었음에도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고 급하게 헤어졌다.

짐을 들고 초조하게 지하철을 기다리고 이동한 후, 도착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고 있는 중 앞에 직원분이 보였다.

 

"모스크바로 가는 아에로플로트 비행기 타는 승객분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여기 승객 두 분 더 들어가십니다!"

 

비행기 내 다른 직원분과 무전을 나누고 잠시 기다려주신 덕분에(우리를 비롯한 많은 지각 승객 때문에 몇 분일지라도 기다려주신 다른 승객분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그렇게 모스크바에서 환승을 거친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첫 시작부터 비행기도 타지 못할 뻔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가끔 와이프와 이날을 돌이키며 이야기하면,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그날 그 짐들을 들고뛰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진이 빠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도착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드디어 도착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 채 그저 들떠 있던 두 명의 한국인이 독일에 도착을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두 달 동안 지낼 프라이부르크로 가기엔 늦은 밤에 도착을 한 터라, 미리 공항 바로 앞에 있는 힐튼 호텔을 예약해두었고, 바로 앞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말에 호기롭게 나갔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더듬더듬 물어보니 누구는 지하로 가서 이동하면 된다, 누구는 2층으로 올라가서 이동하면 된다.

저 많은 짐들을 끌고 다니는데 이리로 가도 안 보이고, 저리로 가도 안 보이는 상황에 속에서는 불이 치솟는다.

더군다나 공항 바닥은 누굴 위함인지 카펫이 깔려있다. 이놈의 애물단지 이민가방은 왜 이리 안 끌려오는지...

인내심이 머리 끝까지 차오를 즈음, 기적처럼(지금도 어디로 어떻게 가서 찾은 건진 기억할 순 없지만) 찾았다.

 

HIlton Frankfurt Flughafen.

The Squaire, 60549 Frankfurt am Main. 

잊지 마세요. 쉽게 생각했다가 찾느라 힘 뺍니다. 미리미리 주소도 체크하고 이동합시다.

 


그렇게 독일에서의 첫날밤은 지나갔다.

일본 여행 중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 힐튼 호텔이었고, 그곳에서 먹었던 조식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좋아서 신청한 조식은 인당 50유로의 가격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기대 이하였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실망감을 안고 호텔을 나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반카드(Bahn Card)를 구매를 하고, 프라이부르크로 가는 ICE기차표를 끊은 후, 드디어 출발한다.

이제 독일 라이프 시작이다.

 

물론 독일에서 적응을 하며 지내는 게 쉽기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꽃길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고 피곤함과 실망감의 연속이었기에 솔직한 심정으로 첫 이미지가 그리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머무르고 언어를 배우기로 결제를 다 하고 온 곳은 괴테어학원이라는 곳이었다.

다른 어학원들에 비해서 가격이 꽤나 비싸긴 했지만, 처음에 조금이라도 더 열정적일 때 더 힘들게 배우자는 마음과 기숙사가 함께 있어서 첫 주거지에 대한 걱정이 덜 하다는 장점에 선택한 곳이었다.

 

그렇게 레벨테스트를 거쳐 반 배정이 되고, 기숙사로 왔다.

미리 신청한 2인실. 와이프와 함께 쓰는 방은 대학시절 사용하던 기숙사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화장실은 방에 있지만 주방은 층에 한 개가 있어서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등 불편함은 있었지만,

처음이라는 설렘과 들뜸은 그 모든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헤어곽의 독일 생활은 시작되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당탕탕은 시작되었다.

 

처음 독일에 나올 때 내가 올린 SNS의 글을 돌아보니 

"막연하지만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작은 꿈을 좀 더 구체화하고 명확히 하기 위해 타국으로 이동했어요.

많이 부딪혔고, 앞으로도 더 많이 부딪히고 넘어지겠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게요."

라고 적은 글을 발견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되돌아봐도 많이 부딪혔고 여전히 부딪히고 있다.

그때 생각한 그 작은 꿈들이 좀 더 구체화되었는지, 명확해졌는지, 손에 닿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어렵다.

작은 꿈은 또 다른 꿈이 되고, 그 꿈들이 또 다른 꿈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꿈을 손에 잡았어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부단히 부딪히고 깨지며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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