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r.Kwak_취미/독일에서 책읽기

침이 고인다 - 김애란 저

o헤어곽o 2020. 4.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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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었다. 자기 계발서나 가벼운 여행 에세이 (Herr.Kwak의 최애 장르)와는 달리 소설 (특히 여느 이런저런 상, 무슨 무슨 상을 받은)은 특유의 자만과 오만을 뽐내고 있다.

물론, 이는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겠지만, 내게는 뭐랄까... "나는 이렇게 추상적이고 진지하고 심오한 문장에 나의 마음을 이렇게 어려운 단어와 문체를 사용해 소설을 이렇게 썼어."라고 자랑하는 듯 느껴진다.

아, 물론 모든 소설이 이렇다는 건 아니다.

 

'침이 고인다'라는 소설은 김애린이라는 작가의 투명한 감성과 참신한 상상력을 칭찬하는 소설 말미의 해설을 읽으면서 나는 더욱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었다. 작가 자신도 아닌 책을 읽은 단지 '제삼자'가 나서서 '이 책은 이러하고 저러하며 저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요러 저러한 내용을 자신의 독창적인 문체로 서술하였으며, 그래서 이 책은 이러한 의의가 있으며,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우수하다."라는 평. 이러한 제삼자의 '평'을 읽고 나면 오롯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느껴야 할 '평'을 마지막에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뭐랄까, 저러한 평을 하지 않으면 내가 소설을 잘못 이해한 듯한 느낌이랄까? 괜히 나도 저러한 감정을 받아야 제대로 이 책을 이해하고 읽었을 것 같은 그러한 생각이 남게 된다는 말이다.

 

P.S :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던 2019년의 나는 그 '제삼자의 평'이 꽤나 불편했나 보다. 이렇게 소설의 내용보다 다른 이야기를 오만하게도 많이 적어놓은걸 보니.

 


책으로 돌아가 보자.

다른 평들을 다 제쳐두고서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새롭게 다가왔던 이유는 이 "침이 고인다."라는 책에는 화자가 없이 그저 그녀, 엄마, 언니, 후배 등 3인칭으로 지칭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안의 내가 나일 수 있고, 후배가 나일 수도 있고, 때로는 엄마가 나일 수도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부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참으로 처량하고 딱하다. 괜히 나도 그 무거운 공기의 방안에 한쪽 발을 담고 서 있는 느낌이다. 빗물이 넘쳐 흘러들어온 지하 단칸방에서 물에 축축하게 젖은 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아니 멍하니 축축한 바짓가랑이와 함께 서 있는 내가 보이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무거운 한숨과 처진 어깨, 가엾은 세상에의 순응이 어쩐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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